말도 익어야 맛있다
깊이 있는 말은 그 파장 시간도 길다
'발효식품'
숙성된 음식은 건강에 좋다. 1989년이었다. 일본에서 낫또를 처음 먹었는데 냄새가 고약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밥그릇에 날계란을 터트려 넣고 간장을 약간 부어 하얀 쌀밥과 비빈 후 김에 싸서 먹으면 한 끼가 해결되었다. 낫또는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경기도 일산에 청국장을 맛있게 하는 곳이 있다. 얼마동안 장사를 안 했지만 최근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갈 때마다 문전성시였던 가게에서 찬으로 나오는 여러 가지의 나물을 보리밥과 비벼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이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발효식품이 많다. 맛도 맛이지만 몸에 좋다고 해서 많이 찾는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에게는 김치가 단연 최고의 발효식품이다.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프라이팬에 볶은 후 두부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있으면 밥에 반찬이 따로 필요가 없다.
요즘 들어 아내에게 "오늘 김치찌개 먹고 싶다."라고 하면 "묵은지가 없어서 맛이 없을 텐데."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치는 김치찌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재료다. 그때 사용하는 김치는 종류 나름이고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지만 찌개에는 대체로 푹 삭힌 김치를 넣어야 제맛이다.
옛날에는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들은 집 앞마당에 있는 검정 항아리 속에 갓 담은 김치를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항아리는 겨우내 김치를 충분히 숙성시켜 주었다. 옹기 벽의 미세한 구멍들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각 가정에서는 김치 냉장고를 따로 두고 보관하지만, 그때만 해도 땅 속 옹기가 냉장고 역할을 했다. 날씨가 따뜻해질 때 항아리 뚜껑을 열면 옹기 맨 위의 빨간 배추 잎사귀에는 곰팡이 모양을 한 하얀 효모 덩어리가 보였다.
골마지라고 하는 이것은 김치 등 발효 식품 표면에 하얀 막처럼 생성되는 물질로, 효모가 산소와 반응해 생기는 효모덩어리라고 한다.골마지를 걷어내고 배추를 들어 올리면 배추 잎사귀는 얇고 보들보들했다. 네 등분해 담근 포기 중 한 통을 집어 올려 쫘악 찢어서 쌀밥 위에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김치찌개에는 물론 갓 구운 고구마와도 찰떡궁합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 서울이나 대도시의 가정에서는 숙성된 김치를 보기가 어렵다. 김장을 잔뜩 해서 보관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마트나 김치전문점 같은 곳에서 김치를 사다 먹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집에서 김치전을 부쳐 먹을 때도 설익은 김치가 재료였다. 푹 삭힌 것은 맛보기 어렵다.
김치찌개를 하는 식당에서도 묵은 김치를 넣어 끓여 나오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얼마 전에는 직장 동료가 김치찌개 식당을 추천해서 방문했던 적이 있다. 가면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예상치 않게 맛있게 먹었다. 옛날에 구경했던 그대로 냄비 안에는 통삼겹살과 가느다랗고 길게 뻗은 조각낸 배추 포기가 들어 있었다.
그럼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말은 어떨까?
얼마만큼의 숙성과정을 거칠까?
잘 익은 김치를 먹으면 맛있듯이 말도 하기 전에 숙성과정을 거치면 제맛이 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는 분은 만나면 쉬지 않고 얘기를 해서 앉아있기가 거북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어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완전히 일방통행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기회를 안 준다. 그 말들 중에는 대부분 좋은 소재만 있어 괜찮지만, 너무 긴 시간의 즉석연설에 그마저도 힘이 들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대화에는 배려라는 어휘가 있으면 좋은 이유다.
살다 보면 주위에서 종종 말을 함부로 하는 이도 있다. 나도 심사숙고하지 않고 언어를 선택하는 누를 범할 때가 많이 있었다.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에 다툼도 일어나기도 하며 연인 간에는 한쪽에게 헤어지자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기회에 나의 말실수로 상처를 받았거나 기분이 언짢았던 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사무실에서도 입을 함부로 놀리는 사람을 가끔 본다. 몇 해 전에는 같이 근무했던 상사가 나에게 "늙어서 그래요."라는 말을 대놓고 했던 적이 었었다.(그는 그러고 얼마 후에 이직했고, 이런 일은 늦은 나이에 공직사회에 들어와 가끔 겪는 일 중 하나였다.) '자기는 나이 안 먹나.'라고 마음속으로만 얘기하고 말았다. 별일이 아닌데도 젊은 친구가 그런 말을 하니 그 당시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이런 일은 평소에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숙성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보다 더 불편한 경우도 경험한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사람을 볼 때다. 내가 아는 지인 A는 같이 있을 때면 동료나 후배들의 흉을 자주 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가 던지는 언어 조각들이 저 멀리 허공에 뿌려져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리길 간절히 바랐던 적도 있었다. 점심때가 되면 약속 있다고 몰래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어디 있냐고 전화를 걸어올 때에는 여북했으면 나에게 전화까지 할까라고 생각하며 '이 사람은 참 외로운 사람이구나'하고 측은함마저 들었다.
모임에 나가보면 여러 말이 오간다. 모두가 그동안 마음에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그 한가운데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수다쟁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런 중에도 웃음기 띤 얼굴을 하며 듣기만 하는 이도 있다. "친구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 좀 해라."라고 옆에서 부추겨보지만 그는 미소만 짓는다. 가뭄에 콩 나듯 그가 한마디를 할 때면 모두가 주목한다. "다들 조용히 해봐라. 친구가 한마디 하신다." 그리고 빵! 하고 유머스러운 그의 한마디가 터지면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반면, 침묵하고 있으면 옆 사람들이 거북한 경우도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회식이 있을 때 우연히 젊은 직원들 틈에 앉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이때 나는 순간순간 수다쟁이가 돼야 했다. 모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주위가 삽시간에 냉기가 돌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어서 때문이었을까 혹시 나의 말실수에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동안 숙성시켜 놓았던 말들을 하며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게 노력했다. 그곳에 있는 내내 입으로는 말하고 머릿속에서는 숙성시키는, 생각에 생각을 덧칠하는 과정을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되풀이했었던 기억이 있다.
김치찌개에 잘 숙성된 김치를 넣어서 먹으면 깊은 맛이 나듯 말도 충분히 곱씹은 후에 밖으로 내보내면 듣는 사람에게 맛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그 맛은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더 깊이가 있고 파장의 시간도 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