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우체국을 갔었는데 그날따라 창구직원이 유난히 나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이유 없이 쌀쌀맞게 말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나 우체국을 나오는데 문득 '내가 직원에게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조금 전 거칠게 한 말에 대해 그 직원에게 사과했다고 했다. 그곳을 나오며 하늘을 보는데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친척분을 만났다. 손아랫 분이 그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데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며 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그 녀석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만 하면 되는데. 사과할 줄 몰라요. 도대체가 기본이 안 돼 있어요. 과오를 인정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거잖아요. 그리고 새로 시작하면 되는데."
"사람이 실수할 수 있지. 실수를 했으면, '아!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인정하면 끝나는 건데 말이에요."
체한 사과 한입 토해내듯 한마디 하면 되는 것을.....
그놈의 말이 뭔데.....
때론 무기요 방패요.
마음의 상처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 치료제가 되기도 하지만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존재.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말 좀 이쁘게 해라.
말을 저렇게 하니 사납다는 얘기를 듣지.
저 사람 말을 참 감칠맛 나게 하네.
저 양반 참 말하는 게 격이 다르네.
넌 입 좀 방정맞게 놀리지 마라 등....
말의 습관은 그 사람의 성격이 되고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파놓은 한계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우월감에서 오는 자가당착이 아닌, 자신에게 미칠 정도로 끊임없이 긍정의 말로 속삭이는 사람에게는 늘 희망이 꿈틀거린다.
그들의 희망은 똑똑한 척 현실에 냉정하고 비판적인 사람의 것보다 더 높고 깊은 곳에 살고 있다.
말. 말. 말.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딜 가든 들리는 소통의 도구.
웃고 우는 세상이라 말없이 사는 것은 공허함이 남는다.
때로는 뱀의 혀가 되어 온갖 탈을 쓰며 감미롭게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다가오기도 하고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 노리개 취급도 하는 놈.
한 번 잘못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음이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자칫하면 그 말이 말(馬) 보다 빨라 소문은 순식간이요. 재미 삼아서 한 방정맞은 말은 멀쩡한 사람을 산 채로 매장도 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
말에 원인이 있기에 그 실타래를 말로써 풀긴 풀어야 하는데..........,
그 수많은 것들 중에 정작 사용해야 할 때 아쉽게도 쓰임새가 적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
그러나 긍정의 말에 희망을 담는 이는 이러한 사과의 말을 사용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시간의 저편에 던져버리고 바로 일어날 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