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잼 Mar 24. 2021

남편의 퇴사 선언에 대처하는 법

남편의 새로운 도전을 수용하기까지


사랑과 조건 사이, 현실과 이상 사이

"여보 나... 사실, 이제 군인 전역하고 다른 것들도 한 번 해보고 싶어."

내 눈치를 보며 많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히 나타나는 표정을 하곤 남편은 아주 느린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야 했다. 무슨 대답을 해 줘야 하고, 또 과연 그 대답에 내 진심은 얼마나 들어있을지를.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싱글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열차게 '내 집 마련'에 대한 목표도 세운 터였다.

사실 미국인들은 '내 소유의 집'이 있고 없고의 사실에 크게 연연하는 것 같지 않지만 한국인의 정서로 집을 포기하기란 생각 외로 쉽지 않다.



하와이의 집 값은 못해도 40만 불~50만 불을 웃도는 수준이니 가볍게 포기하고, 몇 년 안에 본토에 이주해서 산다고 하면 미니멈 20~30만 불 선 정도는 생각해 둬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남편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 '집'을 먼저 걱정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일말의 배신감 같은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줄 거라며? 그럼 그건 위선이었니?'

내 생각을 마치 잘 맞추어 덜컥 잡혀버린 주파수 마냥 캐치라도 했을까, 남편은 대답 없이 골똘히 고민에 빠진 나를 살피고 다시 덧붙인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생각이 났어. 조금 해보고 내가 재능이 없다 싶으면 육군이나 공군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어. "



본인의 인생을 논하는 데 있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마치 반성문을 쓰는 아이마냥 풀이 죽은 남편이 짠해졌다.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 줄 필요가 있었다. 평생 '제이미의 남편'으로서의 책임만을 얹고 무겁게 살아가기를, 나는 강요할 수 없다.

"그렇게 해. 나도 너 갑작스럽게 해외로 장기 훈련 가는 거 사실 힘들어."

이 말을 꺼내기까지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나는 남편이 '군인'이기 때문에 남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

이상 만을 좇기에 세상은 꽤 터프하고 야박하지만, 때로 '이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꽤 좋은 부스터가 되기도 한다는 것 역시, 인정해 보기로 했다.



Benefit(베네핏)에 젖어 쉽게 놓칠 법한 것에 대하여,


남편이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은 진심에 내가 고민으로 응수한 데엔 아마 단 한 가지 이유만이 있을 것이다.

다른 직종에 비해 눈에 띄게 좋은 배우자에 대한 베네핏이었다.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카운슬링에 대한 부분들도 물론 아주 잘 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군 병원 이용이 가능한 부분 및 희망하는 직종에 한하여 특정 회사들과 취업 연계를 해 주는 등의 어드벤티지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그 베네핏들을 내가 다 이용하냐 하니 그건 결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카운슬링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분들은 거의 이용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베네핏을 포기하기 힘든 이유인즉슨, '이주자'라는 포지션에서 정부차원의 백업 시스템이 나를 받쳐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심리적 안정감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권리인 듯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베네핏 이면에 남편의 무거운 고생이 틈 없이 촘촘히 얽혀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됐다.



오랜 시간 고민했을 남편을 더 이상 강요와 강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재계약(Reenlistment)을 강요해서 부대에 남아있게 한다면 내 심리적 안정감은 보장받을지 몰라도, 그만큼 우리의 사이는 성큼 멀어져 있을 것을 알기에. 또 나의 멋대로 정한 남편의 앞날 속에서 남편은 많은 시간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품고 살 수도 있으므로. 때문에 나는 남편과의 관계와 심리적(그리고 경제적) 안정감 사이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간 어떠한 독창성도 허용되지 않는 범위 내의 활동 반경에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온 남편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남편의 이런 '전역' 선포에 양가 어른들은 다소 당황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으로 내쳐버린 코로나의 여파에도 '직업 군인' 끄떡 않고 소위 철밥통으로서의 위력을  보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마저도 결국 우리의 인생임을 존중해주시는 분들이시기에 대놓고 만류 하시진 않았지만 어색한 침묵 뒤에 드리운 걱정의 아우라를 나는 충분히 느꼈다.



알릴만한 분들께 고민을 건네주듯 은근슬쩍 남편의 전역 계획을 다 알리고 나니 막상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남편 전역의 적기는 지금일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인생에서 결국은 시도해버릴 도전이라면 그나마 더 젊을 때, 그리고 조금 더 체력이 받쳐 줄 때 하는 게 추후 실패를 하더라도 데미지가 덜 하지 않겠느냐는 나 스스로를 향한 설득의 메아리였다.



뭣이 그리 중헌디,


어차피 인생은 절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독한 '숫자' 알레르기가 있지만 덜컥 겁도 없이 머리 싸매며 회계를 전공하고,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집 천장이 쩌렁쩌렁하도록 '비혼'만세를 외치다 한 순간 남편과 1년 반의 연애 후 '기혼'이 되어버린 나처럼.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네 계획이 맞냐 내 계획이 맞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남편이 여전히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 주는 것, 그리고

외롭지 않자고 한 결혼이 오히려 의식하지 못한 새에 남편을 더 고독하게 얽매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다가가 질문해 주는 것이다.



남편을 처음 만난 바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단 한순간도 내게 '될 놈'이 아닌 적이 없었다.

남편이 쌓아온 노고에 부응할 잭팟이 언제 터질지 그 타이밍을 우리는 예측할 수 없을 뿐,

여전히 남편이 '될 놈'이란 사실에 대한 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 믿음은 남편 자체에 대한 신뢰로부터도 비롯되지만, 내 안목은 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서도 솟아난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군말 없이 일어나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하는 우리 집 '될 놈'을 조용히 안아주며 속으로 말해본다.

'나중에 성공하면 나한테 에르메스 백 종류별로 사주기로 한 거 잊지 마라,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