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새로운 도전을 수용하기까지
사랑과 조건 사이, 현실과 이상 사이
"여보 나... 사실, 이제 군인 전역하고 다른 것들도 한 번 해보고 싶어."
내 눈치를 보며 많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히 나타나는 표정을 하곤 남편은 아주 느린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야 했다. 무슨 대답을 해 줘야 하고, 또 과연 그 대답에 내 진심은 얼마나 들어있을지를.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싱글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열차게 '내 집 마련'에 대한 목표도 세운 터였다.
사실 미국인들은 '내 소유의 집'이 있고 없고의 사실에 크게 연연하는 것 같지 않지만 한국인의 정서로 집을 포기하기란 생각 외로 쉽지 않다.
하와이의 집 값은 못해도 40만 불~50만 불을 웃도는 수준이니 가볍게 포기하고, 몇 년 안에 본토에 이주해서 산다고 하면 미니멈 20~30만 불 선 정도는 생각해 둬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남편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 '집'을 먼저 걱정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일말의 배신감 같은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줄 거라며? 그럼 그건 위선이었니?'
내 생각을 마치 잘 맞추어 덜컥 잡혀버린 주파수 마냥 캐치라도 했을까, 남편은 대답 없이 골똘히 고민에 빠진 나를 살피고 다시 덧붙인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생각이 났어. 조금 해보고 내가 재능이 없다 싶으면 육군이나 공군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어. "
본인의 인생을 논하는 데 있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마치 반성문을 쓰는 아이마냥 풀이 죽은 남편이 짠해졌다.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 줄 필요가 있었다. 평생 '제이미의 남편'으로서의 책임만을 얹고 무겁게 살아가기를, 나는 강요할 수 없다.
"그렇게 해. 나도 너 갑작스럽게 해외로 장기 훈련 가는 거 사실 힘들어."
이 말을 꺼내기까지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나는 남편이 '군인'이기 때문에 남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
이상 만을 좇기에 세상은 꽤 터프하고 야박하지만, 때로 '이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꽤 좋은 부스터가 되기도 한다는 것 역시, 인정해 보기로 했다.
Benefit(베네핏)에 젖어 쉽게 놓칠 법한 것에 대하여,
남편이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은 진심에 내가 고민으로 응수한 데엔 아마 단 한 가지 이유만이 있을 것이다.
다른 직종에 비해 눈에 띄게 좋은 배우자에 대한 베네핏이었다.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카운슬링에 대한 부분들도 물론 아주 잘 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군 병원 이용이 가능한 부분 및 희망하는 직종에 한하여 특정 회사들과 취업 연계를 해 주는 등의 어드벤티지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그 베네핏들을 내가 다 이용하냐 하니 그건 결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카운슬링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분들은 거의 이용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베네핏을 포기하기 힘든 이유인즉슨, '이주자'라는 포지션에서 정부차원의 백업 시스템이 나를 받쳐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심리적 안정감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권리인 듯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베네핏 이면에 남편의 무거운 고생이 틈 없이 촘촘히 얽혀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됐다.
오랜 시간 고민했을 남편을 더 이상 강요와 강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재계약(Reenlistment)을 강요해서 부대에 남아있게 한다면 내 심리적 안정감은 보장받을지 몰라도, 그만큼 우리의 사이는 성큼 멀어져 있을 것을 알기에. 또 나의 멋대로 정한 남편의 앞날 속에서 남편은 많은 시간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품고 살 수도 있으므로. 때문에 나는 남편과의 관계와 심리적(그리고 경제적) 안정감 사이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간 어떠한 독창성도 허용되지 않는 범위 내의 활동 반경에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온 남편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남편의 이런 '전역' 선포에 양가 어른들은 다소 당황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으로 내쳐버린 코로나의 여파에도 '직업 군인'은 끄떡 않고 소위 철밥통으로서의 위력을 내 보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 마저도 결국 우리의 인생임을 존중해주시는 분들이시기에 대놓고 만류 하시진 않았지만 어색한 침묵 뒤에 드리운 걱정의 아우라를 나는 충분히 느꼈다.
알릴만한 분들께 고민을 건네주듯 은근슬쩍 남편의 전역 계획을 다 알리고 나니 막상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남편 전역의 적기는 지금일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인생에서 결국은 시도해버릴 도전이라면 그나마 더 젊을 때, 그리고 조금 더 체력이 받쳐 줄 때 하는 게 추후 실패를 하더라도 데미지가 덜 하지 않겠느냐는 나 스스로를 향한 설득의 메아리였다.
뭣이 그리 중헌디,
어차피 인생은 절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독한 '숫자' 알레르기가 있지만 덜컥 겁도 없이 머리 싸매며 회계를 전공하고,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집 천장이 쩌렁쩌렁하도록 '비혼'만세를 외치다 한 순간 남편과 1년 반의 연애 후 '기혼'이 되어버린 나처럼.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네 계획이 맞냐 내 계획이 맞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남편이 여전히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 주는 것, 그리고
외롭지 않자고 한 결혼이 오히려 의식하지 못한 새에 남편을 더 고독하게 얽매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다가가 질문해 주는 것이다.
남편을 처음 만난 바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단 한순간도 내게 '될 놈'이 아닌 적이 없었다.
남편이 쌓아온 노고에 부응할 잭팟이 언제 터질지 그 타이밍을 우리는 예측할 수 없을 뿐,
여전히 남편이 '될 놈'이란 사실에 대한 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 믿음은 남편 자체에 대한 신뢰로부터도 비롯되지만, 내 안목은 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서도 솟아난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군말 없이 일어나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하는 우리 집 '될 놈'을 조용히 안아주며 속으로 말해본다.
'나중에 성공하면 나한테 에르메스 백 종류별로 사주기로 한 거 잊지 마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