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차라리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지난번에는 이미 두통과 축농증 그리고 코골이 수술에 관한 실패담을 올린 바 있다. 같은 병명이긴 하지만 남달리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수술도 해보고 약도 먹었지만, 그 모두가 완치는 커녕, 실패로 끝났기에 지금도 그 증상은 그대로 남아 여전히 불편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에 예고했던 대로 나의 결석에 관한 수술 경험, 그리고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해 볼까 한다. 누구나 결석에 걸려본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결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본인이 생각할 때 결석으로 인해 본인만큼 죽을 고생을 해본 사람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도 세 번 이상 들으면 듣기 싫어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병 이야기를 하는데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기에 우선 병에 관한 이야기가 지겹거나 불편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그냥 피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운이 좋은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걸려보지 않은 결석을 난 이미 두 차례나 걸려 남다른 고통을 경험했던 것이다.
처음에 걸린 것은 요관 결석이었다. 요관 결석이란 신장에서 소변이 방광으로 내려가는 가늘고 길다다란 관이 두 개 있는데 그곳에 결석이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난 그 요관 결석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가장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그야말로 남달리 고문에 가까운 극심한 고통,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예로부터 ’병은 숨기지 말고 자랑을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렸든 그 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본인으로서는 자랑거리가 아닌 수치이며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병에 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듯 왜 이런 넋두리 같은 글을 계속 올리고 있는 것일까?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세상에 결석으로 인해 본인처럼 이렇게 운이 나빠 죽을 고생을 한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 고생했던 경험을 누군가에게 꼭 하소연을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란 궁색한 답변 외에 더 이상 다른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결석이 두 번이나 걸린 것은 운이 안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특수 체질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어떤 병에 걸릴 때마다 모두 실패를 거듭하고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결석이 걸렸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죽을 고생을 했던 것이다.
난 그동안 여러 가지 병에 걸렸던 경험을 통해 가령 똑같은 병에 걸렸다고 하여 각자가 겪는 고통 역시 체질과 병의 정도에 따라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같은 결석에 걸렸다 해도 그다지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잠깐 견뎌내다 보면 빠른 시일 내에 쉽게 완치가 되어 건강을 되찾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누군가는 오랜 기간 열심히 치료를 받아 봐도 끝까지 낫지 않고 여전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어가는 본인과 같은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 어떤 병이 걸릴 때마다 아무리 잘 고친다는 이른바 큰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해보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너무 두서없는 서론이 길어졌기에 여기서 이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겠다.
상식적으로 결석(結石)이라고 하면 우리들의 몸 안의 장기 속에 돌처럼 단단히 엉겨 붙은 물질을 의미한다.
결석이 생기는 원인은 몸 안에 수분이 부족해질 때 몸 안에 있던 노폐물들이 단단히 뭉쳐지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생기게 되는 무서운 병이 바로 결석이라 하겠다.
결석이 생기는 원인은 특히 여름철에 탈수 현상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식습관과 관련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즉 수산, 요산, 칼슘 등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많이 섭취할 때에도 발생하는 병이라 하겠다.
결석이 주로 잘 발생하는 곳은 신장, 요관, 방광, 요도 등 요로계통이라 하겠다. 요로계통에 결석이 발생하게 되면 배뇨를 할 때 그야말로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게 되어 그처럼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결석은 여성들의 출산의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병이라 알려지고 있다.
결석은 요로계통이 아닌 담낭(쓸개)에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담석증이라고 부른다. 담석증에 걸리면 소화불량, 복통, 구토 등의 증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음식을 섭취한 뒤 1~2시간 뒤에 오른쪽 상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 담석증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이토록 무서운 결석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복을 받은 사람이며 선택을 받은 사람이 아닐 수 없겠다. 왜냐하면 그 병에 걸려본 사람만이 그 병에 대한 그야말로 극심한 통증을 깨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어쨌거나 난 운이 좋은 사람들은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넘어가는 결석이란 끔찍한 병을 두 차례나 걸려서 유난히 모진 고생을 다 겪어보았다. 남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예사로운 결석이 아니었다. 보통 결석에 걸린 사람들과 달리 상상외로 유난스럽게 모진 고생을 경험했던 것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기에 이렇게 유난스럽게 구구한 서론이 길어졌을까? 아마 내가 경험했던 치료 과정을 듣고 난 뒤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리라 믿는다.
아마 9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오후, 모처럼 방바닥에 오른쪽으로 모로 누워서 한가롭게 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왼쪽 옆구리에 갑자기 가벼운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운 자세가 잘못되어 그러려니 하고 왼쪽으로 자세를 바꾸어 누워 보았다.
그러나 통증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했더니 마침내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게 되었으며 울상이 된 채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누구나 이 병에 걸리면 처음 증상은 거의 같았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병원에 빨리 가긴 가야 하겠는데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안 사람이 아파트 바로 맞은 편에 이웃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집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그 집 내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우리 집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그러나 난 어찌나 통증이 심한지 인사를 해야 하는데 말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방바닥에서 뒹굴며 몸부림만 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통증이 너무 심해 눈이 곧 뒤집힐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앞집 내외는 급히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며 나를 부축하며 급히 나가자고 하였다. 난 일어날 수도 없고 부축을 받기도 몹시 고통스러웠다. 혹시 들것에 실려 나간다 해도 그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대로 뒹굴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별 수 없이 그렇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아가며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옆집 남자가 운전하는 차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좀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그나마 좀 큰 독립문 근처에 있는 병원이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적십자 병원도 있고, 고려병원(현재 강북성심병원)도 있었다.
그러나 통증이 너무 심해 한 시가 급한 이 마당에 그곳까지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급했던 것이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신호 때문에 자동차가 잠시 멈추고 서 있어도 그렇게 답답하고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차의 뒷좌석에 쓰러져 뒹굴며 불평 한마디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병원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곧 당직 의사가 달려오더니 내 옆구리를 주먹으로 슬슬 두드려 보고 있었다. 그러자 자지러질 것처럼 통증은 더 심했다. 곧 진단을 내렸다.
“틀림없이 신장 결석입니다.”
의사가 서둘러 엉덩이에 급히 주사 한 대를 놓았다. 주사를 맞은 지 약 10분쯤 있으니 그렇게 지독했던 통증이 마치 봄눈 녹듯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정말 살 것 같았다. 그제야 겨우 인상을 펴고 웃을 수 있었다. 이렇게 효과가 빠른 주사가 있다니 참 희한하고도 고맙고 신통한 일이었다.
통증이 잦아들자 의사가 말했다. 다시 통증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난 통증이 사라진 홀가분한 마음으로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 2시간 후, 다시 똑같은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아팠다. 별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죽기 살기로 택시를 불러 타고 다시 그 병원으로 달려가서 다시 주사 한 대를 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약 10여 분쯤 지나자 언제 아팠었느냐는 듯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통증은 다시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참 신기하면서도 신통한 주사이며 나에게 그 주사는 적어도 구세주보다 더 고마운 주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사가 말했다. 자주 집에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응급실에 그대로 누워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난 통증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병원에 누워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면 다시는 그런 증상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건 나 혼자만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안정을 취할까 하고 잠깐 누워 있다 보니 영락없이 또다시 통증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그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맥주를 실컷 마시면 결석이 저절로 나올 수도 있다고 하였다. 마침 술을 좋아하는 나는 틈이 나는 대로 맥주를 배가 부르도록 실컷 마셔보았지만,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동안 네 번째인가 응급실로 달려갔더니 이번에는 응급실에 있던 환자들이 모두 크게 소리내어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들이 그렇게 웃는 것은 누가 생각해 봐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풀 방구리 드나드는 생쥐처럼 있는 대로 오만상을 찌푸린 채 응급실을 계속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는 내 꼴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웃어대고 있어도 난 전혀 부끄러운 줄 몰랐다. 부끄러움보다는 그만큼 통증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때 간호사 한 사람이 웃는 사람들을 향해 나를 옹호해 주기 위해 소리치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처녀 간호사임이 틀림없었다.
“그만 좀 웃으세요! 이 병에 걸리면 아기 낳는 것보다 더 아프단 말이에요!”
난 그렇게 고통스러운 통증을 참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간호사에게 한마디 되물었다.
“그건 간호사 당신도 몰라요. 당신이 아기를 낳아봤소? 그건 아기도 낳아보고 결석도 걸려본 다음에 비교해 보고 난 다음에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내가 그렇게 묻자 간호사는 그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이 또다시 우습다는 듯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까르르 웃고 있었다.
주사 한 대를 맞고 안정을 되찾은 다음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통증이 일어나자 또 밤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오늘 오후부터 벌써 다섯 번째 응급실을 들락거리다가 어느덧 새벽녘이 된 것이다.
주사 한 대를 맞고 한동안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상증세가 벌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배에 복수가 크게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복수부터 제거해야 된다며 이번에는 아예 입원을 하라고 권했다. 사실 심각하게 복수가 찬 이 상태로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난 별 도리없이 일단 의사의 지시대로 침대에 누웠다. 결석이 걸린 데다 복수까지 심하게 차올라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워낙 신경이 예민해서 누가 옆에 한 사람만 있어도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꼬박 밤을 새우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복수는 어떻게 뺄 것이며 앞으로 치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복수에 찬 물은 이제부터 콧속에 호스를 넣고 밤새도록 뺀 뒤에 내일 아침에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할 예정이라고. 그리고 세브란스에서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조금만 대기하고 있으면 호스를 끼워주겠다고.
의사의 설명을 들은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이 병원에서 계속 주사를 맞으며 통증을 치료를 했으니 하면서 당연히 여기서 수술까지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는 장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애초부터 세브란스로 보낼 일이지 왜 계속 오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난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기왕에 콧속으로 호스를 넣고 복수를 빼며 밤을 꼬박 새울 것도 걱정이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바로 내가 직접 세브란스로 가는 게 더 낫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난 침대에 누운 상태로 몹시 불안하고 초좨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는 의사가 장비를 가지고 와서 호스를 끼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그때부터는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울 생각을 하니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변줄과 대변줄도 끼우게 된다는 것이 더욱 겁나고 불안했다.
안 사람이 힘은 좀 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누워있으라고 적극적으로 만류했지만, 내 귀에 지금 그런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그래서 의사가 오기 전에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남산만큼이나 불러진 배를 움켜 잡고 몰래 응급실을 탈출해 버리고 말았다. 속이 다 시원하고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결석의 통증은 불행 중 다행히도 잠깐 멎어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안사람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내린 뒤 바로 가까운 약국으로 갔다. 그리고는 활명수 10병을 샀다. 그 유명한 부채표 가스활명수였다. 그리고는 약국에서 바로 활명수 10병을 연거푸 모두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방바닥에 요를 깔았다. 그리고 배가 몹시 불러 고통스러웠지만, 요를 매트 삼아 거꾸로 구르기도 하고 재주를 넘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며 미친 사람처럼 있는 대로 뒹굴어보았다. 그 광경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틀림없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그렇게 약 30여 분간 미친 짓을 계속하다 보니 이건 또 웬 다행이란 말인가!
잔뜩 불렀던 복수가 거짓말처럼 푹 꺼져버리고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참 신기한 일이었다. 미친 짓을 하기를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 * )
- 1회 끝 -
※ 요관 결석 후기가 너무 길어 1회를 여기서 마치고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