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와의 대화 - 향유고래 vs 향유독서
"세원아, 엄마 얼마만큼 사랑해?"
"향유고래만큼"
우리 집 막둥이의 고백이다. 왠 향유고래?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생각학교에서 읽은 '모비딕' 덕분에 고래에 관심이 생겨 아이에게 읽어줄 그릠책도 '고래' 그림책으로 골랐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이지만 꽤 정교한 묘사로 다양한 고래가 그려져 있고, 고래의 특징이 적혀있어서 어른이 봐도 될만한 수준이었다. 그 책 덕분에 막둥이는 범고래, 향고래, 혹등고래, 외뿔고래, 돌고래 등 고래 그림을 보면 이름이 줄줄 나올 정도가 되었다.
막둥이 눈에는 향유고래가 제일 거대하게 보였나보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데, 그 크기를 향유고래에 빗대어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참고로 향유고래는 몸집의 절반이상이 머리이며, 이 머리 속에는 기름(=향유)으로 가득 차있다. 향유를 가득 채운 채 유유히 바다를 향유한다. 짠 바다냄새가 진동하고, 바다 바로 위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아주 다른, 낯설고 힘든 바다 속에서.
하루 하루 꽉 짜여진 일과 속에서 아침 시간을 내어 몽롱쓰기를 하고, 워킹맘들에게 황금같은 시간인 주말에 시간을 쪼개 토론을 한다. 읽고 쓰는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벅찰 때도 있고, 담에 걸린 불편한 목으로 어깨를 계속 풀어가며 소크라테스를 만나야 하는 괴로움도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내 생각이 촘촘하게 채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도끼로 맞아 생각이 깨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낯설고 힘든 바다 속에 있는 건가?
이 거친 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평화롭게 자신의 영역에서 유영하고 있는 향유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
괴롭고 거친 먼 망망대해를 묵묵히 책으로 향유해 보자고 나를 다독여본다. 포기하지 말자. 하루 하루를 쌓아 보자. 모이다보면 언젠가는 향기나는 기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막둥이에게 한번 더 물어볼 참이다.
”세원아,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끄덕뜨덕) 어, 향유고래 아니아니 향유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