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이를 품고 살아간다
야누슈 코르착! 그는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으로 의사이면서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아이들을 존엄한 인격체로 대했다.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수용소로 행진한 걸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따뜻한 그림책 한 권을 만났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이다.
야누슈 코르챡의 작품 '마치우시 1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표지가 흥미롭다.
왕을 상징하는 주홍색 정장을 입은 아이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다.
그 왕관은 아이에게 너무 커서 아이의 눈까지 덮어 버렸다.
왕관으로 눈이 가려진 아이는 앞을 볼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방황한다.
책표지가 내용을 알려준 셈이다.
왕이 되어버린 어린이, 마치우시는 모두가 행복하게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한가?
아이들의 왕이 된 마치우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이들을 위한 시골집이 잘 완성되도록 등 고민한다.
이 세상을 이렇게 놔둘 수 없다고 세상을 바꿔 보려는 시도를 해 보기도 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마치우시 같은 어린이를 품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 품고 있는 어린이는 과연 무엇일까?
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해 보는 것, 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엄마요", "대통령이요" 하는 것 등 내 안에 어린이를 살짝 끄집어보자.
생각학교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니 늘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 있었다.
직장생활에다 아이 셋 육아에 아무것도 안해도 정신줄을 놓고 사는 내가 두꺼운 책을 끼고, 아침마다 글을 쓴다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왜 하는 거야?” 질문 하면서 먼 과거로 돌아가 내 안의 어린이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살았던 바닷가 동네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큰 소리로 이야기하거나 부부싸움이 나면 어느 집인지 다 알 정도로 좋게 말하면 서로 사정을 잘 알고, 나쁘게 말하면 사생활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바다 냄새가 짠하게 올라오는 동네가 지금이야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지만 어린 시절엔 그 동네가 참 싫었다.
얼른 어른이 되어서 탈출하는 게 목표였다.
바닷가 구석에 있던 우리 집에 어느 날 위인전 전집과 어른들이 읽을 수 읽는 두꺼운 양장본들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어린 마음에 책이 가득찬 책장만 보아도 우리 집이 바닷가 동네에 있는 무식한 집은 아니겠다고 안도했었다.
이 책들을 모두 읽으면 똑똑한 사람이 되어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 좋은 동네에 살게 될 것 같았다.
책이 그저 먼 세상, 더 좋은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줄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던 그 때!
하지만, 이제는 내가 읽는 책들이 내면의 깊은 생각 속 세상으로 데려다 줄 것을 기대한다.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여행으로 책이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고전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토론하면서 내 안에 가장 어린이를 꺼내 보는 것 어떨까?
이 세상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며 무엇을 바꿔볼 지 마치우시처럼 순수하게 고민해 보면 어떨까?
촉촉히 비 내리는 오늘 하루, 내 안의 어린이를 찾아 행복한 추억 한 순간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를 읊어보면서.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