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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Oct 07. 2023

명상할 때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템플스테이 후기

화계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국내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지만 내가 화계사를 선택한 이유는 프로그램 중에 108배를 하면서 108 염주를 만드는 것이 있어서였다. 한 번의 절에 하나의 구슬-.


나를 내려놓는 템플스테이와 모순적이게도 108배와 동시에 염주를 만드는 것에 스스로 집착을 했었다. 그때는 집착인지 몰랐었다.

화계사로 출발하는 날, 햇빛이 따스했지만 바람 끝은 차가운 날이었다. 화계사는 북한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밤이면 겨울같이 추울 것이 뻔해, 털옷과 긴팔옷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152번 버스를 타면 한 번에 화계사로 간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배낭을 안전하게 누이고 잠에 들었다. 보통 때라면 자외선 때문에 햇빛을 피하나, 왠지 그날만큼은 햇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어,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잠이 들었다.


어느새 도착한 화계사, 울창한 나무들, 언덕 그 가운데 도량이 있었다. 템플스테이 홈은 화계사 일주문을 넘고 바로 첫 건물에 있다. 들어가니 스님이 반기며 이름을 물어본다. 방배정을 받았다. 혼자 쓸 것을 예상했으나 예상외로 룸메이트가 있었다. 눈웃음이 이쁘고 속눈썹이 가지런한 그녀였다. 잠시 어색한 인사와 간단한 소개를 나눴다. 우리는 준비된 차와 다기를 이용해 차를 끓였다.


"업무가 너무 과중되어 있어서 누가 말 걸기만 해도 울었어요"

라며 웃으면서 얘기하는 그녀는 내게는 말할 필요 없었겠지만 상당히 고되어 보였다. 그녀의 팀장도 그녀가 그래 보였는지 휴직을 권했다고 한다. 휴직을 한 상태인데도, 그녀는 휴직 후 내쳐야 할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내려먹은 작두콩 차


 템플스테이 1박을 함께할 인원은 모두 5명이었다. 우리는 서로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은 절에서 지낼 때의 예의를 알려줬다. 합장, 차수, 삼배, 고두배, 108배, 예불을 지낼 때 어떻게 하는지 등등 한 번에 익혀야 할 것들이 많아 머리가 긴장이 됐다. 안 그래도 정신과에서 약을 미처 받지 못해서 아침약을 걸렀더니 하루 만에 조금 예민해짐을 느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최근에는 108배와 염주를 만드는 것은 동시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108배는 스님과 같이하고, 염주는 혼자 따로 만드는 것이라고- 왜인고 하니, 다들 어지럼증을 느끼고 힘들어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러려고 왔는데 내심 많이 아쉬웠다.


이제 우리를 담당하는 스님께 인도되어 도량을 안내받는다. 화계사의 대웅전, 보화루 그리고 석가모니의 역사까지.


"석가모니는 싸움을 끝낸 사람이에요. 무슨 싸움이었을까?"

"나 자신..?"

"아니에요. 이원화 싸움을 끝낸 사람이에요."


스님은 말을 이어서 하셨다.

"'너'라는 존재는 '내'가 있어서 생기는 거예요. 내가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너'가 되지 않아요. 그니까 세상은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는 거지."


세상은 나의 '상'으로만 이뤄져 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은 없는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너와 나의 단절, 내가 지금 사물을 명명하고 '내가 아닌 것'으로 단절시키는 것은 없다.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인데 우리는 '나'가 있어서 '너'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내려놓는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 이론이 생각나는 시점이었다. 그도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세상은 없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철학의 궤는 어느 동안은 궤도를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미륵불을 보니, 도량안내가 끝났다. 합장하고 내려가시는 스님을 붙잡고 여쭤봤다.

"스님, 왜 108배와 108 염주는 같이 꿰매지 않나요?"


스님은 잠시 생각을 하시곤, 말씀하셨다.

"원래 그렇게 해야 되긴 하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멀티플레이를 해가지고 절이면 절, 구슬이면 구슬 집중을 못해요. 따로 해가지고 집중을 나눠하는 게 나은 것 같더라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좋은 게 좋은 대로."


바로 납득이 됐다. 실제로 108배를 하면서 넘어지는 분도 계시고 그러면서 구슬도 꿰어야 하니 참으로 힘든 고행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 자체는 힘들 일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보니, 내가 참으로 이것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조금의 반성을 하게 됐다.


다음은 미륵불 앞에서 작게 휘갈겨 쓴 메모다.

가만히 있을 때 행복하다, 내가 세상의 일부가 된 듯 생각한다. 나를 담대하게 생각할 때 고민이 얼마나 집착하던 작은 것임을 깨닫는다. 내가 바라던 염주에 대한 집착은 여기서는 지양하는 것이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는 종각에 모여 타종을 한다. 외국인, 국내 사람들 할 것 없이 템플스테이를 온 사람들이 모두 타종을 하는 것이기에 모두의 힘이 다 다르다. 거기서 보면 또 각자만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듯했다. 아, 하지만 이것도 나와 남을 가르는 생각 중에 하나인 것이다.


예불을 마치고 108배를 하러 간다. 108번의 절을 할 땐 그냥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기리며 절을 한다. 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내려 찍는다는 느낌으로 공손히 절을 했다. 옆의 사람 속도도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얼마 남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서 눈을 감고 영상의 소리만 들으며 절을 했다.


절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낮추는 행위다. 나를 내려놓는 108번의 행위. 나는 그 수행을 하면서 내가 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길 빌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룸메이트와 함께 염주를 만들었다. 매듭법이 잘되지 않아 얼마간 고생을 했는데, 이것도 집착인 것 같아서 그만두고 망한 대로 두었다. 이 염주는 내 첫 염주이며, 내가 집착을 버렸던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염주가 될 것이다.


투명 108배 염주


그다음 날 아침 공양을 재빠르게 먹고 아침 일출을 보러 갔다. 새해도 아니고, 정월 대보름도 아니고 10월의 어느 평일 오전, 나와 룸메이트, 그리고 한 분은 같이 일출을 맞이했다. 나는 작게 기도했다. 내가 기도를 하니, 옆에서 말을 걸던 한 분도 가만히 입을 다물어 주셨다. 작고 소중한 배려였다.


쾌청한 가을 아침이었다. 모두 좋다, 좋다는 말만 연속해서 말했다. 정말 좋았기에.


아름다운 일출



일출을 보고 이제 퇴절(?) 준비를 했다. 이제 마지막 명상 시간만을 앞두고 있었다.


템플스테이에 온 5명 모두는 명상 초보자였다. 스님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감해하시기도 했지만, 능숙하고 싱잉볼로 명상을 리드하셨다. 나의 신체를 느끼고, 신체 일부를 느끼고, 어떤 생각, 소리가 들려도 판단하지 말고.


그러다가 목을 젖히고, 목을 돌리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말씀을 하셔서.. 들어야 했는데 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씩 그렇게 움직였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스님에게 여쭸다.

"스님, 저는 명상 때 목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잠시 안경너머로 날 보던 스님이 입을 떼어 말했다.

그건 자아가 세서 그래요. 그래서 저항을 하는 거예요. 본인이 지금 고통스럽거나 스스로가 판단하고 있는 게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요.


뭔가 그 말을 듣는데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내 자아가 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드러날 일이라니, 명상을 하면서 추구하는 무아지경과 지금의 나는 상극이구나.


모두 하나의 소감을 말했다.

'다른 소리가 들렸어요.'

'다른 소리를 들었다는 걸 알아챘네요. 그것부터 시작이에요.'


그리고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지금 내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면, 그 생각을 한 나를 떠올려 보세요."


스님의 말에, 나의 상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정말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눈물이 몇 갈래로 떨어졌다.


콧물도 쏟아졌다. 입안으로 들어와 그거는 차마 훔칠 수밖에 없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우느라 혼났다.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몰라줬던 내 자아가 나온 걸까? 자신을 알아줌에? 나는 아직 내 슬픔과 고통을 나를 통해서 계속 기억하고 있구나- 그렇구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스님과의 차담시간이 이어졌다. 스님은 우리에게 붓다의 말을 알려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다.


요는 하나였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만을 우리의 세상으로 가져온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괴로움 같은 것들은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만약 내가 계속 괴롭고 힘들다면, 그때의 그 감정을 비췄던 거울의 나를 내가 계속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기억들을 내버려 둬야 한다. 그때의 기억들은 '지금'의 내가 아니다. 그저 잡고 있는 것일 뿐. 나는 나의 과거의 기억들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들만 남들에게 줄 수 있다. 내가 만약에 부정적인 기억만 가지고 있는 그릇이라면 남들에게 그것밖에 주지 못한다. 그리고 똑같은 부정적인 경험이 생겼을 때 과거의 기억대로만 생각하고 살게 된다 그게 바로 '윤회'라고 한다.


나는 이제까지 내게 일어났었던 모든 가정 불화, 이별, 회사에서의 트라우마, 소송 등 모든 나쁜 일들을 다 기억하며 살고 있었다. 있었던 일이니, 그것이 나를 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붙잡고 있던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나라고 구성지으려고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이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비추고, 기억하는 것들로만 이뤄진다.


그러므로 생각했다. 이제 겪는 모든 현상들을 그냥 잠시 비추고 내버려 둘 것이라고. 행복도 불행도 왔다 가는 것이다. 행복도 잡으려 하면 그것도 집착이 되고, 비교가 된다. 불행은 피하려 들면 같이 달려오는 행복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행복과 불행은 순환하면서 내게 지속적으로 올 테니까.


모든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모두 덕담 하나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타고 왔던 152번 버스로 그대로, 햇빛을 그대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유튜브 영상으로 후기를 확인할 수 있어요!

https://youtu.be/88QuH-cYo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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