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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Mar 24. 2024

30대의 이별

무기력에서 탈피하는 방법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난 원래 주제를 정하고,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내용을 미리 정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번 글은 무엇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시작한다.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적을 예정이다.


이별

남자친구와 이별했다. 2년 동안 잘 맞았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서로 미래를 보는 방향이 같지 않았다.

그래서 2년을 넘기고 며칠 뒤 사랑을 종결했다. 직후 깨달았다. 내 사랑은, 우리의 시간은 무척이나 멋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한 남은 행동이랄까 무엇도 거릴 게 없었다. 칼로 감정을 베었다면 이런 느낌 일까.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공허함이 남았다. 익숙했던 온도와 무게의 부재로 난 그 시간을 어찌어찌 메워야 했다. 침대에 그저 누워만 있었다. 눈은 빠르게 진행되는 쇼츠만 보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듣고, 날 포개어 주는 그의 살인 듯 이불을 끌어안았다. 평일엔 익숙하게 출근을 하고, 실실 거리며 웃고, 무표정으로 퇴근했다. 주말엔 앞의 일들을 반복했다. 그나마 내 정신줄을 붙잡아 주던 약도 다 떨어졌는데 도저히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반복됐다. 악순환이었다. 그 당시 나의 모습은 나선환으로 무한히 떨어지는 미끄럼틀이었을 것이다. 그러기를 약 2~3주 반복했을 때 용기를 내서 병원을 예약하고 다시 방문했다.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지인 씨, 더 가면 안 돼요. 더 가면 돌아올 곳도 모르게 돼"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이끌어주려는 또 다른 내가 이곳으로 날 떠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아내고 싶었나 보다. 숨만 쉬는 생명 부지의 삶이 아닌, 스스로 내가 이끄는 나의 삶.


안정을 만드는 행동양식

나는 내 삶을 안정적이게 만드는 행동양식을 잘 안다. 다만 게으른 상태의 내가(내가 게으르다고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운동을 하고, 일기와 감사일기를 쓰며, 가계부 관리로 나의 경제를 관리하는 것. 더불어서 책을 읽으며 나의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혀가는 것.(조금이 나마라고 쓴 것은 내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안정을 위한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일 때가 있는데, 앞서 말한 게으른 상태의 때랑 삶의 동기부여를 잃은 때다. 그야말로 무기력한 상태의 나는 도저히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는 억지로 산책을 나가거나 해야 하는데 그럴 땐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이땐 술도 마시고 싶지가 않다.) 픽- OFF가 되어버린 모양새랄까. 다행히도 얼마 전 정신을 차려 앞선 행동양식을 지켜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다시 불완전의, 불안의 나선환 미끄럼틀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생각양식

무기력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난 2개의 책을 읽었다. 김혜남의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과 닉 트렌튼의 '생각중독'이다. 이렇게까지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처음 겪다 보니 이렇게 까지 되는 내가 너무 궁금해졌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글귀가 있어서 공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삶에 녹여, 필요할 때 사용하는 생각양식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법륜 스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결혼을 하느냐 혼자 사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을 했으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도록 해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즉 불안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결코 당신을 해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불안이 찾아왔을 때 '괜찮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소중한 내 시간이요,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하고 힘들며, 미래가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가 심한 경우 그 감정을 무작정 따라가다가는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대인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냉소의 가면을 벗고 자신에게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외롭고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으며, 멋지게 성공하고 싶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살면서 잃어버리는 무수한 것들을 어떻게 잘 떠나보내고, 어떻게 그 경험을 변화와 성장으로 이끌 것인가?
어릴 적 꿈꿔 온 내 모습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거대한 꿈과의 이별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 말고도 우리는 안전하게 있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최고가 되고 싶어 하고 또 나만의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욕구들이 완전히 충족될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충돌하면서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을 통해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며, 세상을 배우고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뭘 해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이해 운동합니다"라고.
노인은 결코 '끝나 버린 존재'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순간순간 성장하기 위한 샐로운 과제를 부여받는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신체의 한계가 아니라 그 한계를 믿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이다.



생각중독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면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보게 된다. 
계속 스트레스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신적인 판단력으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해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할 뿐이 아니라 잘못될지도 모를 일이나 이미 잘못된 일에만 집중하느라 기쁨, 감사, 연대감, 창의성 같은 수많은 긍정적 감정을 놓치고 만다.
스트레스 해소의 핵심 목표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다.
불안은 유발하는 서사나 판단을 덧붙이지 말고 그저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난 불안이 심한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말고 "지금 불안을 겪는 중이야"라거나, 더 나아가 "지금 불안을 감지했어"라고 해보자.
다시 외면화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문제나 실패 자체가 아니다. 자신과 삶에 닥친 시련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있다면 고난이라는 일시적인 경험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얻고 정체성과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다. 구름 자체가 하늘은 아니듯이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우리가 아니다. 문제는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그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통제할 수 있다.
그냥 걱정을 적당한 자리에 놔두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는 즉시 걱정은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인다.
내가 느낀 특정한 감정이 반드시 진실에 부합한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추론하는 사람은 실제로 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도 자신의 의심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낡은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증거를 찾으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그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감정은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상황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내 반사적 생각이 실제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출처는 믿을 만 한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문제 해결인가? 반추인가?



깨달음

나의 생각은 낡았고, 늘 생각하던 대로 생각해 오기 때문에 내가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느낄 때 그 감정과 느낌이 어떤 생각에서 온 것인지, 근거 있는 생각인지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을 온전히 믿지 말자
내게 벌어지고 있는 슬프고 힘든 일들은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기꺼이 대응하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든다면, 과거의 후회는 날 부정의 구렁텅이로 끌고 갈 것이며 미래의 걱정은 날 부정적이게 만들 것이다.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저 멀리 두자.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긍정적인 희망, 감사등을 놓치게 된다.
불안도가 높다고 해서 나를 스스로 '불안한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말 것, '불안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인지할 것.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내 생각의 결과는 내가 어떻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황을 보는 방식을 바꿔보자.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상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문구와 나의 짧은 깨달음을 적어보았다.

이 글이 내게 불안에 힘들거나, 무기력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할 때 다시 찾아와서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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