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저녁 보내세요!
10년 가까이 알아온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말을 해주고 내 글을 읽어보라고 보내줬더니 한 친구가 내 글을 읽으니 전인권 씨의 '행진'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고 말해줬다.
잉?! 전인권?
전인권 씨 하면 뭔가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생각과 그의 폭탄머리, 그를 둘러싸던 많은 사건들 그리고 그의 특이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다지 함께이고 싶지는 않은 트러블메이커'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분에겐 미안한 말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 노래 제목을 잘 몰라서 검색창에 쳐 봤더니, 1985년 들국화라는 한국의 5인조 그룹이 데뷔 앨범 '들국화'를 발표했을 때 처음 실린 곡으로 전인권 씨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또한 들국화의 대표 곡이기도 한데, 당시 전인권 씨는 앨범에 '빠른 노래' 한 곡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들국화 - 행진 (전인권 작사/작곡, 1985)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행진) 행진(행진) 행진(행진) 하는 거야
행진(행진) 행진(행진) 행진(행진) 하는 거야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난 노래할 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행진(앞으로), 행진(앞으로), 행진하는 거야 (우리 꿈은)
행진(앞으로), 행진(앞으로), 행진하는 거야 (우리 꿈은)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행진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는 거야 우리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행진
우리나라 만세 하는 거야
1985년.. 우리 엄마의 학번이 바로 85학번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갓 어른이 되었을 1980년대 후반의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이 들국화의 데뷔 앨범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 당시 국내 음악계에 큰 영향을 준 앨범이라고 한다. 또한, 앨범 표지의 들국화 멤버들의 사진의 구도는 세계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앨범 <렛 잇 비(LetItBe)>에 대한 오마주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들국화 (두산백과))
'진보'를 말하는 사람은 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괴상한 사람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 페이지 들을 장식하며 세상을 바꿔왔다. 비연예인인 우리가 생각하는 전인권 씨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든 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노래를 들어본다. 내가 아는 노래다. 제목이나 가사만 보고는 무슨 노랜지 알 수가 없었는데 아주아주 많이 들어봤던 익숙한 노래였다. 행진~ 행진~ 하는 노래. 내가 본 영상은 2016년에 들국화의 다른 멤버들과 전인권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행진을 부르던 영상이다. 영상에는 짤막한 인터뷰도 있었다.
"30년 전의 들국화는 어떤 의미?"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행진하는 거야."
"지금의 들국화는 어떤 의미?"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그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행진하는 거야."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잘 몰랐을 때에는 그는 그저 이상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나니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이 30년 전에 했던 말로 30년 후에도 같은 대답을 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쓰는 글이 가끔은 너무 분노에 찬 글이고 가끔은 너무 괴롭거나 슬픈 글일지언정 궁극적으로는 행복으로 나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글을 쓰고 싶다. 행복한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며 세상에는 너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5년의 그를 감히 상상해본다. 아마도 그는 평화롭지 않던 세계에서 평화를 말하며 세계의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던 비틀즈처럼 한국에도 평화와 진보의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그 곡을 썼던 것이 아닐까. 사실 지금 그는 역사 속에 점점 감춰지고 있는 '비주류'가 되고 있는 구세대 사람이다. 내 주변에다 내가 전인권 씨의 팬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도 뻔하다. 왜냐고 물을 것 같다. 대체 왜냐고. 그거 아는가? 대체 왜 이런 것이냐는 질문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 나는 항상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왜 그랬어야만 하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아도 계속 질문을 했고 내 질문이 지겨운 누군가는 내 질문 때문에 나를 떠나기도 했을 정도로 그렇게 질문이 많았다. 질문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
나 혼자 밥 벌어먹고살기도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나 혼자의 삶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은 부족한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때 세상은 나에게도 더 편안한 삶을 선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좋아져야 우리의 삶도 좋아질 수 있다. 당장 눈 앞의 밥보다 더 큰 미래를 보고 간다는 말이 너무 허망하다면 나는 배고파도 멀리 보고 가겠다. 배가 좀 고프면 어떤가. 살이 빠지고 좋겠네. 너무 배부른 세상이다. 조금 덜 먹어도 좋다. 큰 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주위를 둘러보고 힘든 사람에게 작은 위로의 한마디라도 건네는 것부터가 사회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사실 개개인의 집합이다. 개인이 없으면 사회도 없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그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했을 때 그 한마디를 듣고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난 항상 긍정적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생각은 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해왔지만 나 또한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남에게 좋은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 역시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기회들을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용서나 위로들이 내 삶이나 타인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진폭제가 될 수 있다면 내 자존심 한 번 세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에는 술을 먹고 살짝 기분이 평소보다 더 좋아진 상태로 주위의 지인 10명 정도에게 위로나 안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지, 힘들지, 괜찮아."와 같은 말.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냐고 묻냐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지내, 물어봐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더라. 그들의 삶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문자 하나에 그렇게 힘이 난다고 말해줬다.
당신의 한마디가 정말 괜찮지 않은 사람을 살리는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왜 그렇게 사느냐는 말보다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였다. 행진~ 행진~이라고 외치기 까지는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적어도 괜찮냐, 혹은 괜찮지 않아도 된다, 잘 지내냐, 몸은 좀 어떻냐는 등의 안부를 가깝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았던 지인에게 물어보는 저녁을 보내면 어떨까? 당신의 저녁이 조금은 더 풍성한 기쁨으로 가득 차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