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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Jul 20. 2022

사일로랩 미디어아트展 <AMBIENCE>

빛, 물, 향, 소리로 빚어낸 거대한 사유의 공간

문이 열리는 순간, 눈부신 섬광과 함께 축축한 바다 내음을 품은 안개가 덮쳐왔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뒤이어 들려온 천둥소리는 짧은 탄성조차 삼켜버렸다.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난 것처럼 불안과 고독이 엄습했다. 뿌연 공간 속에서 나는 어느새 한 줄기 희망이 될 무언가를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그제야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등대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무가 자욱한 공간은 어디가 뭍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사일로랩의 신작 <해무 HORIZON> 전시관에 들어섰을 때, 작품을 눈으로 보기 전부터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미디어아트라면 화려한 모션그래픽을 먼저 떠올렸던 편견을 완전히 깨는 공감각적 경험이었다.


미디어아트 그룹 사일로랩이 2022년 7월 19일부터 이함캠퍼스에서 첫 단독전 《앰비언스 AMBIENCE》를 선보인다. ‘빈 상자’라는 이름의 이함캠퍼스는 단추 회사로 부를 일군 기업가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경기도 양평에 건립한 1만 평 규모의 복합 문화공간이다. 1999년 완공 후 무엇으로 공간을 채울까 답을 찾을 찾는 사이, 입구에 심었던 플라타너스 묘목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20여 년 고민 끝에 선택한 개관전의 주인공이 바로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사일로랩이다.



순수예술과 상업 프로젝트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해 온 사일로랩은 이번 《AMBIENCE》展에서 네 개의 신작을 포함해 총 6개의 공간 몰입형 작품을 펼쳐 보인다. 빛, 물, 향, 소리로 빚어낸 ‘분위기’가 관람자의 기억과 만나는 순간 전시장은 거대한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내면의 기억을 들춰내며 우리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상업 전시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모션그래픽 프로젝션 맵핑이 화려한 채색화라면, 사일로랩의 작품은 여백의 미를 살려 담백하게 그려낸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잔별 STARDUST>은 BTS가 출연한 현대자동차 Positive Energy Challenge 캠페인에 등장한 LED 라이팅 인스톨레이션 작품이다. 창백한 작은 별들이 명멸하는 모습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만큼 눈부시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유년의 기억 속 ‘작은 별’인 동시에 어느 가을 산장 옥상에 누워 바라보았던 황홀한 밤하늘을 떠오르게 한다.


무지개 구름을 뜻하는 <채운 GLOWING CLOUDS>에서는 곡선 스크린 위에 맑은 하늘과 저녁노을, 오로라의 빛을 품은 시간의 색깔이 느린 음악과 함께 순환하며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센스 스틱을 태운 매캐한 향은 애달픈 감정을 자극한다. 8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묘라던가 시간의 흐름 속에 아련해진 첫사랑의 추억 같은 것 말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감각을 형상화한 라이트 아트 작품 <칠흑 PITCH BLACK>은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암흑천지에서 분주하게 좌우상하를 탐색하는 레이저 조명, 파도와 기포 소리, 둔탁한 기계음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심해를 잠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푸른 레이저 조명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무늬 또한 볼거리다.


지하 전시실로 들어서자 휘영청 밝은 달이 뜬 스크린 앞에 대형 원형 수조가 놓여있다. 작품 <파동 RIPPLE>이다. 수조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파문이 이는 수표면에서는 달빛도 출렁인다. 파동 치는 달빛이 다시 스크린에 영사되면 수표면은 고요할 방법이 없다. 원형 수조는 궁궐에서 화재에 대비해 물을 담아 두었던 드므를 연상시킨다. 불의 신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갔다는 전설처럼, 수조를 들여다보는 우리도 수표면에 이는 파문 속에서 일렁이며 퍼져나가는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채플 같은 삼각지붕 모양의 건물에서는 마지막 작품, <잔별>과 <윤슬 SPARLING RIPPLE>이 함께 연출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외부의 고난(해무)과 고독한 절규(칠흑), 내면의 소용돌이(파동)를 통과해 마침내 평화를 찾은 노년의 관조와 미래를 위해 남겨둔 희망을 떠올리게 된다.


[사일로랩 앰비언스 展]

기간 : 2022.7.19(화)~2023.6.30(금) 10:30~19:00, 월요일/공휴일 휴관

관람료 : 성인 15,000원, 청소년 13,000원, 어린이 10,000원

예매 : 네이버 예약, 현장 구매 가능

장소 : 이함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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