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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r 20. 2022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면 한 번의 성공이 절실하다.

Never doubt yourself!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3주가 흘렀다. 그동안 많은 걸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화상 미팅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동료들과 만려고 노력했다. 로벌 기관답게 내가 속한 팀의 멤버들도 전부 글로벌하다. 이비드, 제임스, 빅토리아, 로라, 카라, 제시카, 스티븐까지... 영국과 미국 원어민들 사이에 수줍게 자리한 내 이름이 아직은  어색하다. 


 처음 일주일은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아침엔 미국에 있는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엔 유럽에 있는 동료들과 채팅을 다. 낮에는 한국사무국에 속한 몇 안 되는 동료들이 열심히 계속 자료를 보내준다. 그러다 보니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댄다. 내 상사가 분명 '워라벨이 중요하다'라고 했는데 이러다간 워라벨은커녕 하루 14시간씩 일하게 생겼다. 시차 때문에 미팅은 항상 밤 10시가 넘어 시작된다. 밤 12시를 넘기는 것도 예사다. 난 아침형 인간인데 아무래도 바이오리듬을 바꿔야만 적응이 가능하겠다. 래도 지난번 회사에서 첫 한 달 동안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달달 볶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위로해본다. 게다가 내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건 분명 왕복 4시간을 대중교통에 갇혀 있는 것과는 천지차이 말이다.


 디지털노마드의 이점을 한껏 이용하고자 입사 첫 주 제주에서 보냈다. 6개월도 안되어 이직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입사 확정으로 들떠있던 6개월 전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씁쓸한 기억들로 지친 몸과 마음이 제주를 절실히 갈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제주에 아침마다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6개월간 절망에 빠져있던 내게, 루가 다르게 봄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푸 파란 제주의 하늘은 희망의 다른 모습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따스한 무언의 위로를 받은 후 난로에 불을 붙 닥타닥 불꽃이 본격적으로 피어올라 내 주변을 둘러싼 공기마저 따스해지면 그제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밤새 팀원들 간에 오간 대화들을 확인할 용기가 생겼다. 처음 듣는 용어와 생소한 기업들 이름들 때문에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이해되는 날이 오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에 한참 동안 눈을 고정시키며 그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을 꼬박 지켰고 밤이든 낮이든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무슨 일이든 시키기만 해 봐라, 완벽하게 해낼 테니' 라며 긴장 속에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가끔은 내가 제주에 있는 건지 육지에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도 점심시간 한 시간을 굳이 지켜가며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총알처럼 집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금세 하루가 저물었다. 런 삶은 상상 속에 있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쿨한 디지털노마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데도 자꾸만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잠을 설치게 만드는 녀석이 있. 단 한 번이었지만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지난 회사에서의 실패의 경험이 자꾸만 자신감을 갉아먹고 딋걸음질치게 만든다. '언제쯤이면 이들의 대화에 나도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을까.' '괜찮다고, 시간을 가지라'라고 이야기해주는 동료들의 말도 조급 해지는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6개월의 상흔이 내게 남긴 것 바로 이것이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잘하는지 스스로도 잊어버리기 전에 '나는 이제껏 꽤 쓸모 있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어 진다.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기 해선 한 번의 성공이 절실하기에 매일매일 성취감에 목이 바짝 마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신감이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불안에 온 마음이 점당해 버렸다.


 언제쯤이면 제주의 파란 하늘의 위로가 없어도, 따스한 공기에 마음이 노곤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을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면 월요병이 없어질 줄 알았건만 당최 약도 없는 이 질병의 근원은 물리적인 출근여부가 아니었다. '다가오는 일주일 동안 내 몫을 해낼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아직 해 보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이 나약함을 어찌하리...... 이 순간 갑자기 팀원 중 하나인 제임스가 첫 소개 때 내게 강조하던 말이 스치듯 떠오른다.


"Never doubt yourself!"


막막한 내 기분을 자신도 겪었다며 절대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라며 몇 번이나 강조하던 그였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도움을 청하라며 미소 짓던 그의 말에 이 순간 정말로 불끈 힘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고 했던가. 비록 몸은 수억만 리 떨어져 있는 동료들이지만 바로 옆에서 날 힘들게 했던 전 회사의 동료들과는 정반대로 언제든 내 손을 잡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그들이 내겐 꿈만 같다. 내 어려움을 먼저 물어봐주고 도움을 주려 애쓰고 힘든 일은 함께 해결하려 하는 그들에게 나도 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잠시나마 커진 이 마음이 불안을 누르고 있는 동안 재빨리 책상 앞에 앉는다. 마음 깊숙한 곳 똬리를 틀고 앉은 불안이 튀어나올 때마다 이 주문을 외우리라.


 'Never doubt myself, I am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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