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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18. 2022

이제 행복해 질 일만 남았다.

 요즘 자주 새벽에 잠을 깬다. 새집으로 이사한지도 열흘이 지났고 주말마다 줄줄이 잡혀있는 집들이 약속으로 마음이 바쁜 일상... 새벽 기상은 빨리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잠시 늦춘 양, 차분할 틈을 준다. 덜 깬 의식을 불러 모으며 거실에 나와보면 밤새 열대야로 뒤척였던 아이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아이를 침대에 바로 뉘이고 발밑에 선풍기를 어주면 그제야 편안한 표정으로 다시 잠이 든다. 새벽까지 켜져 있던 에어컨 덕에 공기는 여전히 숨 쉴 만 하지만 그래도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자연이 밤새 내뱉은 후덥지근한 공기를 데려와 본다.


 이런 일상에 익숙해져 갈수록 이상하게도 엄마 모습이 더 자주 떠오른다. 오늘은 길에서 주운 새끼 고양이가 병에 걸려 죽는 이야기를 읽다 또 엄마 생각이 났다.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예뻐하시는 우리 엄마. 고등학교 다닐 때쯤 이던가. 아주 작은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식구가 되었다. 10살쯤 먹은 말티스, 금지가 터줏대감으로 있었기에 그 작은 생명체는 그의 등쌀에 못 이겨 침대 밑 구석에서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그런 새끼가 가여워 엄마는 금지가 자는 틈을 타 몰래 맛난 간식을 주기도 하고 꼭 품에 안아주며 예뻐하셨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작은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먹은 걸 전부 토해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랑곳없이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몇 차례 진찰과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그 아이는 끝내 2주를 넘기지 못했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울던 우리 엄마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엄마는 그 후로도 한참을 그리워했다.


 2주간 정 주던 강아지가 죽었다고 몇 년을 슬퍼하셨던 엄만데 10년을 키우던 손녀딸은 지금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자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부모품을 떠나기 마련이건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할머니 품을 떠난 손녀를 보는 내 마음이 왜 이리도 시린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처음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아닌데 이번 분가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것처럼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무심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집에 손님이 오면 또 전화를 해 요리 레시피를 몇 번이고 물어 엄마를 신나게 하고 저녁 찬거리를 생각하다가도 엄마는 뭐해 먹나 궁금해 또 전화를 한다. 이런다고 구멍 뚫린 엄마의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몸은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가야 하는 곳에 있어도 마음만은 엄마 옆에 있다고 에둘러 얘기하고 있음을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조금 덜 슬펐으면... 조금 덜 서운해했으면 좋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유난히 씩씩하다. 홀가분하니 자유로워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신다. 난 그 말이 진심이었으면 좋겠다.


 10년간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아야 했던 꼼군도 요즘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아무리 살갑게 대하고 격의 없는 가족처럼 살았다 해도 어른들과 함께 산다는 건 분명 힘들었을 터. 그도 분명 아이를 키워준 장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만 살게 되었다는 기쁨에 장모님 앞에서도 입꼬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런 그가 한편으론 철없어 보이고 또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시부모님과 10년을 살다 분가한다면 나 또한 표정관리가 안 될 것이 뻔하니 말이다.


 원래도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번 분가로 집안 살림과 가전을 싹 갈아치울 모양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양념통 하나까지 직접 골라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할 일은 우리 집의 경제부 장관으로서 그저 너무 비싼걸 사지는 않는지, 꼭 필요한 물품인지 판단만 내리면 된다. 사실 굳이 나에게 이야기 안 해도 되지만 그는 내게 허락(?)을 받는 절차를 즐기는 듯하다. 알콩달콩 상의하며 살림 장만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가 보다. 그렇게 몇 주를 하다 보니 벌써 이사한 집에 물건들이 그득하다. 그의 취향대로 물건들이 채워지니 거실 바닥은 로봇 청소기가 돌아다니고 에어컨은 자꾸 말을 한다. 휴지통은 가까이만 가면 자동으로 열려 그 옆에 가기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도어록도 손가락만 대면 열리니 편하긴 한데 이렇게 쉽게 열려도 되나 싶다. 그래도 행복해하는 꼼군을 보면 나도 마냥 웃음이 난다. 샤워하고 속옷만 입고 밖에 나와보고 싶었다며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에 엄마의 홀가분하다는 말이 오버랩된다.


 이제 나만 즐거우면 되나 보다. 자식들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난 엄마와 장모님과 장인어른 앞에서 의젓한 사위노릇 안 해도 되는 꼼군.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애매한 줄다리기를 안 해도 되는 나. 우리 모두 행복해 질일 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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