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정하기

여전히 제자리여도 괜찮아

by 지오바니

1년을 쉬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현실의 나는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휴직계를 낸 지 아직 한 달도 채 안 되었지만 벌써 채용사이트를 들여다보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업무에 대한 도전 혹은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겠다는 마음에서 일까.


쉬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1년 뒤 회사로 복귀했을 때 업무 능력과 회사 생활에 대한 감이 예전보다 떨어져 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다. 팀을 이끌어야 하는데 계속 업무를 해 온 팀원들보다 나의 역량이 떨어진다면 나 스스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나마 그 생각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공부를 함으로써 휴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합리화를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공백이 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도 다시 돌아와 변함없이 멋지게 일했던 예전 회사의 한 선배가 떠오른다. 팀을 이끌던 위치에서도 미련 없이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휴직을 감행했고 1년 뒤 더 푸근해진 미소와 함께 돌아와 역시나 변함없이 자신의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물론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었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보낸 1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었는지 정말 잘한 일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었다.


이젠 내가 그 위치에 서 있다. 비록 육아휴직은 아니지만 비로소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나는, 그러나 휴직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이 시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조차 못하고 있다. 심지어 회사 대표님조차 "우리 회사에서 이런 기회를 가졌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잘 쉬고 돌아오세요"라고 얘기했었는데 무엇이 자꾸만 내 뒷덜미를 붙드는 걸까.


휴직하자 또 한 살 먹어버린 나이 탓일까, 외벌이가 되어버린 가계 때문일까, 나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빛의 속도로 변화해가는 여러 가지 사회, 경제 시스템과 그것들을 저만치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은 무력감이 원인일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뾰족한 답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내 신경을 거스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


결국 내려놓지 못했구나. 아직은.

몸은 쉬고 있었지만 생각과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따로 놀고 있는 한 난 결코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단 하루도 이런 불안감을 떨치고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내 생각을 죄여 드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주 오래전 나의 이런 성향을 잘 알던 한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이 생각난다. 머리 위에 먹구름을 이고 다니는 사람의 에세이였다. 제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 책을 읽으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안심이 되었었다. 그 책은 예민하고 불안해하고 또 생각과 걱정이 많은 것이 꼭 고쳐야 될 병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예민하기에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할 수 있고 걱정이 많기에 더 큰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는 거라며 괜. 찮. 다.라고 말해줬다.


오늘 나는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나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고, 지금의 나도 나쁘지 않다며... 이런 나를 인정하고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닿아 있지 않을까.


그때를 기다려보자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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