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나들이

아이에게 다가가기

by 지오바니

어제는 한 시간 정도 산책한 것 빼고는 종일 집에서만 보냈다. 그랬더니 오늘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긴급한 압박이 느껴진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주말에 하루를 집에서 보내면 꼭 그다음 날은 바깥공기를 쐬어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나이기에 휴직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집에서 얼마나 있을 수 있겠냐며 넌 분명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어라도 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집을 나서야겠다는 결심으로 날씨를 확인하니 수도권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이 놈의 눈이 설마 나를 따라다니는 건가?'


하지만 여긴 제주도도 아니고 통제된 해발 500미터 중산간 도로에 갇힌 것도 아니니 외출을 감행하기로 한다. 아이와 함께 동네에 새로 생긴 뉴미디어 도서관에 가볼 요량이다. 아이는 늦잠을 자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더니 갑작스러운 도서관 나들이 통보에 울상이다. 이제 머리가 클 대로 큰 아이는 왜 그런 계획을 얘기도 없이 마음대로 세우냐고 퉁명스러운 얼굴로 불만을 토로한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제 아이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 실감이 된다. 아이가 1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더니, 아이는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무럭무럭 커 버렸다.

너무 늦은 걸까...... 이제서야 자신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엄마가 낯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런 날씨에 밖에 나가는 게 싫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착한 우리 딸은 결국 못 이기는 척 나를 따라나서 준다.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

다행히도 새로 지은 도서관은 자료실뿐만 아니라 아이가 흥미 있어할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와 리코딩, 뮤직 스튜디오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신기해하며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한참을 구경하다 매일 책을 끼고 사는 엄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된 아이는, 어느새 어린이 자료실 한쪽에 자릴 차지하고 독서 삼매경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그 옆에 한참을 앉아 학교 과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주 특별할 것 없는 외출인데 사람 없는 평일, 쾌적한 도서관에 앉아 아이와 나란히 책을 보고 공부하는 이 시간이 왜 이리 행복한 지 모르겠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면 잠깐 구경만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점심으로 근처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함께 먹고 다시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음미하며 보냈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에 집에 돌아와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며 물었다.

"엄마와 나들이 어땠어? 생각보다 좋았지?"

"응. 오랜만에 둘만 나간 건데 괜찮았어, 재밌었어"

"그럼 다음에 또 갈까?"

"그래 좋아!"


무언가 대단한 성취를 한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든다. 단 시간에 지난 10년 동안 헐거워진 상태로 이어져 온 우리 사이를 조일 수는 없겠지만, 오늘처럼 조금씩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살가운 모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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