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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cycle Grand Tour Jun 02. 2023

방랑의 노래 - 자전거 세계일주 #2

< 티베트 전사의 땅, '캄'  >




< 터널 통과 후 펼쳐진 다른 세계 >


< 얼랑 산 >

 

< 티베트 문화권 시작 >


< 뒤로 멀리 보이는 다두 강 >



   4킬로가 넘는 얼랑(Erlang) 터널을 통과하니 구름은 여전히 많지만,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습도와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모든 안내문, 상점 간판에 티베트어가 병기되어 있어 새로운 문화권에 도착했다는 게 바로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산들과 그 사이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구름들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동을 나에게 선사한다. 요 며칠간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서 누적된 피로가 단번에 씻겨 나가는 듯했고, 제 때 끼니를 챙기지 못했음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 같다. 짙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내리쬐는 햇살은 마치 한여름 태양볕과 같이 강렬했고, 그 찰나를 놓칠세라 미처 말리지 못한 빨래를 자전거에 매달고 신나게 달려 나간다.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늘 통과해야 할 다두 강과 루딩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루딩현은 지금은 쓰촨성에 속해있지만, 원래는 티베트의 ‘캄’(Kham) 지역이다. 그 지역민은 사람을 뜻하는 ‘파’와 합쳐서 ‘캄파’라고 부르는데 험한 지형 때문인지 용맹한 전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 티베트 - 자치구인 '위짱', 쓰촨 서부와 윈난 북서부를 포함하는 '캄', 칭하이와 간쑤일부인 '암도' >



    루딩은 19세기 중엽의 태평천국운동의 마지막 지도자인 석달개와 4만여 명의 부하들이 숨을 거둔 곳이다. 다두 강을 얼른 건넜어야 할 상황에 부인이 아들을 낳자 사흘간 축제를 벌이다가 홍수에 강이 불어났고, 그 사이 청군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1935년, 이곳은 모택동과 홍군의 대장정 중 가장 긴박했던 무대가 된다. 모택동은 시간지연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만 석달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고, 쇠사슬로 된 루딩교를 신속하게 건너 국민당군을 공격했다. 결국 홍군은 두다 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고, 이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재기에 성공하여 훗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 루딩 교 관련 역사 안내 >


< 현재는 주변에 고속도로도 있다 > 



    그 루딩교는 입장료를 내고 건널 수 있는데 당연히 자전거는 안된다. 여기에서 하루를 머물든지 아니면 자전거를 놓고 강을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든지 할 수는 있었지만, 시간적 압박과 자전거를 두고 다른 곳을 다녀오는 데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고도 2400미터 정도였던 얼랑 터널을 지나 고도 1400미터인 루딩을 거쳐 고도 2800미터인 캉딩으로 간다. 아직은 그리 높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빠르지 않게 가다 보니 고산지대에 쉽게 적응한 것 같다. 특별히 숨이 더 차지도 않고, 페달도 가볍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에,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중간에 하루 쉬어 가기로 한다. 가는 도중 작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식점이 있다. 운이 좋다.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 티베트에서의 첫 식사 - 토.계.볶. >


< 이른 저녁 식사 - 회궈로우 >


< 주민에게 허락받고 캠핑 >


    중국을 혼자 여행하면서 힘든 점이 여러 개 있을 테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다.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음식은 메인 메뉴를 시키면 밑반찬이 나오지만, 중국은 정말 해당 메뉴가 이름대로 정직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 '채를 썬' '감자' '볶음'이면 정말 그 감자볶음 말고는 없다. 메뉴 하나의 양이 적은 것도 아니고, 긴 여정에 비해 예산도 넉넉하지 않아 음식점에 혼자 가면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힘들다. 어쨌든 저녁 식사 후, 음식점에서 씻고 일찍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은 11월 16일, 티베트의 고산 지대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오고 바람도 강하게 분다. 가지고 있는 모든 동계 장비를 꺼냈다. 동계용 에어 매트리스와 침낭은 이미 10월 말, 바오지에서 한중 넘어가는 친링산맥에서부터 사용했고, 지금은 실내 방한 슈즈를 신고 방한모자도 쓰고 잔다. 추위에 강한 편이라 아직까지는 별 문제없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동할 때마다 해발고도는 계속 높아지고, 태양의 남중고도는 최저점을 향해 계속 낮아질 것이다. 그래도 사실, 약간의 설렘이 있다. 티베트 고산 지대의 한겨울 추위란 어느 정도일까? 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감(?). 너무 무모한 것만 아니라면 뭐든 직접 경험해 보고픈 성격이라 그렇다.


< 아늑한 보금자리 >


    그동안 만났던 중국인들에게 캉딩에 대해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캉딩정가'(The Love Song of Kang Ding)에 대해 말해줬는데, 남녀 사랑에 관한 이곳의 민요가 퍼져나간 것이었다. 캉딩을 포함한 캄 지역은 티베트 내에서도 중국에 대항하는 시위와 봉기가 과격했던 지역인터라, 이곳이 한족에게는 '정가'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다. 


    

< 캉딩 입구 >



    길가의 안내판에 한자와 티베트어가 병기되어 있긴 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오성홍기와 음식점에 걸려있는 시진핑 사진을 보면,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 놓인 힘없는 민족이 겪게 되는 질곡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오르막길 페달을 밟고, 야안 출발 후 3박 4일 만에 드디어 캉딩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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