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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디터 Jul 02. 2022

굳이 팀으로 운동하는 이유?

크로스핏만의 특이점 1. 팀 와드(Team Wod)에서 배운 파트너쉽 

크로스핏을 망설인 것 중에 하나는 후기에서 간증하는 박스 회원들 간의 강한 유대였다. 박바박(박스 바이 박스)일지 모른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해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우정을 다지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하고 느슨한 관계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 나는 이제 사람을 이유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좌불안석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다. 고작 운동 하나 선택하는 데 이렇게까지 심각할 일인가 싶지만 사람이 괴로워 버스를 탈 때도 눈을 꼭 감고 탄 적이 있던 내게는 자연스럽고 진지한 이유였다. 그럼에도 크로스핏을 결심한 데에는 1인 운동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운동을 배우지만 결국은 혼자서 제한 시간 내에 종목을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박스를 나오면 끝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명한 크로스핏 후기(원제: 찐아싸의 크로스핏 첫날 후기)





하지만 나의 착각과 달리 크로스핏은 개인전과 두 명이 함께 짝을 이뤄 종목을 수행하는 팀전이 적절히 섞인 운동이다. 처음 며칠 동안 개인전을 하다가 갑작스레 팀전을 해야 했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긴장했는지. 나는 왕초보이니 수준이 안 맞다는 이유로 혼자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은 사라지고 배에 복근이 살아 숨 쉬는 숙련자 분과 짝이 되었다. 이후로도 다른 숙련자 분이 나를 이끌어주는 팀 와드를 했었고, 혹은 나와 비슷한 위치의 분을 만나 으쌰으쌰 하며 같이 호흡을 맞추거나 때로는 내가 응원을 하며 앞장서기도 했다. 몇 차례의 팀 와드를 거치는 동안 나는 내가 함께 이 힘든 시간을 뚫고 나가는 파트너로서 어떤 사람인지, 어떤 파트너가 좋은 파트너인지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다. 나는 파트너로 낙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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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했다. 우선 나는 숫자 계산이 약해서 내 몫을 해내느라 집중력을 다 써버리는 탓에 내가 해야 할 개수를 잊어버릴까 봐 긴장했고(예를 들어 40 버피 점프의 경우 2명이 40번을 20, 20 등으로 나눈다) 그래서 파트너가 바통을 넘겨받아 자기 몫을 할 때 응원하거나 숫자를 세어줄 여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이 팀전을 통해 나는 경쟁심이 강하고 이기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서도 잘하는 파트너를) 재촉하고 싶은 아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새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마지막 이유는 일을 할 때도 스스로 고쳐야 할 단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스를 터덜터덜 기어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니, 일하거나 운동하는 것처럼 협력해야 할 때 파트너로 믿음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실패를 거듭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7월의 첫날. 팀 와드가 시작되었다. 1000미터 로우, 40개의 버피와 박스 점프, 20개의 프런트 스쾃를 둘이 나눠 총 3라운드를 해내면 된다. 코치님이 짝 지어준 나의 파트너는 박스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었다. 한 달 하고 열흘을 넘긴 나와 수행 능력의 정도가 비슷했지만 팀 와드는 처음이실 테니 당황하시지 않게 내가 도와드리고 싶었다. 잘난 척처럼 보이지 않게, 다그치는 것처럼 느끼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가르쳐드리는 게 나만의 마음가짐이었다.      




"1500을 (손을 앞뒤로 번갈아가면서) 250, 250, 250, 250 이렇게 할까요? 아니면 500, 500 이렇게 할까요?" 




가뜩이나 단순 계산조차 어려운 내가 전략을 짜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굴린 질문이었다. '내가 능력자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나 왕쪼렙인데' 걱정하는 나와 달리 파트너는 "250 250 이렇게 해요!" 하고 명쾌하게 대답해주었다. 그 밝은 목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 대답을 필두로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 팀 와드는 누가 결정하고 누가 그걸 따르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가 긴장했던 것은 파트너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한 탓에 내가 파트너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팀이니까 함께 상의하고 호흡을 맞춰가는 것인데, 팀이므로 부족해도 괜찮은데 말이다.     






쨔란다, 쨔란다! 격한 응원과 힘찬 함성이 이 악마 같은 운동을 극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친목이 생기는 걸지도 모른다






"헉헉, 지금 몇 개째예요?" "9개요! 하나만 더 하시면 돼요! 마지막 하나!"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혹은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와 파트너, 우리는 익숙지 않은 팀전에 자기 몫을 해내기도 벅찼지만 서로의 개수를 대신 세어주면서 기운을 불어넣었다. 나는 박스 위에 걸터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손가락을 하나하나 굽히며 파트너가 헷갈리지 않게 해주었고 파트너 역시 자신의 차례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 쉬면서도 다음 종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하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파트너가 힘들어 보이면 내가 조금 더 해내려고 하기도 했다. 로잉의 경우 줄을 당기고 놓은 숫자보다 m가 더 빨리 카운트된다는 점을(예를 들면 100m를 당겼다 놓으면 숫자가 더 105m로 스르르 올라간다. 오류는 아닐 텐데 원리는 모르겠다) 이용해 파트너가 240m까지 당기고 놓는 걸 보고 있다가 남은 것은 내가 하겠다고 재빨리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이다. 파트너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내 몫을 대신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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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호흡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 지금 이거 할 때가 아닌데!" 박스 버피 점프 10개가 남았는데 혼이 쏙 빠져서 건너뛰고 오버 헤드 스쾃를 하려고 하는 나를 파트너가 정신 차리게 해 주었다. "우하하하, 헐 죄송해요! 빨리 할게요!"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데 실수한 게 민망하고 미안해서 무작정 웃어버리고 마는 나를 파트너도 닮은 입 모양으로 웃어주었다. "괜찮아요! 하나!" 혹은 파트너가 숫자를 잘 못 세어 더 많은 개수를 했을 때는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어서 더 크게 격려해주기도 했다. "고생하셨어요!" 뒤로 갈수록 너무 힘들어서 더 많이 헤매었고 그럴 때마다 서로가 멋쩍지 않게 웃어주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와드를 끝냈을 때, 거의 마지막으로 마지막 종목을 완료했다.   










순위 중심 인간인 내게 이 기록이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오늘 처음 이름을 알게 된 파트너 분의 이름을 칠판에 적는데 초 단위가 기억이 나지 않아 파트너에게 눈짓을 했다. "저희 언제 끝났죠?" 그러자 파트너는 "음, 아마 36?" 그리고 서로 또 웃음이 터졌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약간 속인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왕 속이는 거 10초만 더 당겨보면 뭐 어떤가 싶어 "그럼 26으로 해요!" 했다. 그렇게 끝까지 완벽한 우리의 담합으로 7월의 첫날, 최종 기록은 33분 26초로 결정. 땅땅! 







한숨을 돌리고 탈의실에서 다시 파트너의 얼굴을 보니 다시 어색해졌다.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파트너를 재촉하거나 잘난 척을 했을까 걱정스러워 사과를 하니, 대범한 파트너는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오늘 같은 레깅스 입었어요!" 하며 검정 레깅스의 로고를 가리켰다. 마음으로 하는 귀엽고 다정한 하이파이브 같았다. 




  









좋은 파트너, 원 팀이라는 건 뭘까. 여성 운동을 주제로 한 잡지, 휘슬(Whistle)에서는 "가장 좋은 팀은 능력이 끝장나는 사람들을 한 데 모은 게 아니라, 안전하다는 감각을 주는 바로 그 팀이 가장 좋은 팀이다"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 하나 더한다면 많이 웃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 날의 팀 와드만큼은 숫자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걸 알아서 기뻤다. 그건 바로 아마 박스 안에서 우리가 제일 많이 웃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여전히 내가 좋은 파트너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로스핏을 하면서 조금씩 어렴풋이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주는 파트너, 웃어주는 파트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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