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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디터 Aug 07. 2022

용기의 기초대사량은 얼마인가요?

운동을 중도 포기한 뒤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 

크로스핏은 힘들다. 20분 내외의 짧은 시간 내에 '가장 빨리, 가장 많이'를 최우선으로 삼는 운동이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려 속도와 힘을 높인다. 열띤 분위기에 초보들도 덩달아 자신의 페이스를 놓치고 휩쓸리기 쉽다. 세 달이 조금 넘게 크로스핏을 다니고 있는 나도 아직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게 어렵다. 하지만 그런 과열이 완주의 부스터가 되기도 하는 게 이 운동만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계까지 나를 몰아붙이는 게 좋았다. 가학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버피, 푸쉬 프레스, 박스 점프, 스모 데드리프트 하이풀, 월볼샷을 각각 25번씩 3라운드를 해야 하는 와드가 나온 날, 나는 운동을 완주하지 못했다. 1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중도 포기를 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포기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시작부터 의욕이 사라져 아예 대충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심한 감기 기운과 생리 기간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대보았지만 1라운드라도 제대로 끝내보았더라면, 끈기를 더 부려보았다면 자신에게 덜 실망했을 것이다. 크로스핏이 뭐라고, 악착 같이 땀을 흘리며 바닥을 구르고 박스를 뛰고 바벨을 들어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일찌감치 주저앉은 나와 달리 마지막 최후의 1인이 되어 자신의 몫을 다 해내려고 하는 사람의 그 땀에 젖은 등이 강하게 남았다. "파이팅!" "할 수 있다!" "한 개만 더!"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숫자를 세고 있는 그를 응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끝까지 운동을 완주한 그이는 환하게 웃으며 "아, 오늘 힘드네요"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가 꿀꺽꿀꺽 마시던 탄산수처럼 도전을 성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원하고 청량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니 힘들거나 부상의 위협이 느껴지면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손 쉬운 포기는 운동만이 아니라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도 몰랐다. 다음 날, 4라운드가 진행되는 와드를 하던 중 고비인 3라운드에서 로잉을 당기다가 '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달콤하게 피어올랐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어 번 포기한 것이 벌써 습관이 되어 이렇게 불쑥불쑥 브레이크가 되어버린 것일까. 여기서 멈추면 분명 숨은 더 돌리고 몸은 덜 아프겠지만, 조금만 더 가면 해낼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오래오래 마음에 진득하게 달라붙을 것이다. 여름에 물컹하게 녹아내린 아스팔트 바닥처럼. 어쩌면 그런 검은 마음은 일상에도 슬그머니 나타나 나를 멈추게 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에 놀라 더 정신을 집중하고 끝내는 데 목표를 두었다. 남들보다 많이 하는 것도, 빠르게 하는 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순간이다. 오직 나와의 싸움이라는 크로스핏의 목적을 조금은 실감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삐-" 마지막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짧게 울렸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그날 와드를 완주해냈다. 마지막 한 개까지 더 들어올리려고 노력한 끝에 기록도 좋았다. 비록 C레벨이었지만 전처럼 타인과의 비교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단계를 낮춰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다.


중도 포기한 날의 기분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완주해낸 날의 기분을 곰곰이 번갈아 보았다. 흔히 근력 운동을 하면 근육이 체지방보다 칼로리 소모를 많이 하기 때문에 기초대사량이 증가한다고 한다. 근육 1kg을 늘리려면 하루, 한 달의 운동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랜 시간 공들여 몸을 키운 뒤에도 근력 운동을 소홀히 하면 늘어났던 근육도, 기초대사량도 다시 줄어든다. 그 속도는 근육을 기르고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허무하게 빠르다. 용기에도 기초대사량이 필요하다면 그건 어느 정도일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뿌리쳐가며 한 번 더, 조금 더 해낼 수 있는 용기의 기초대사량. 그렇게 늘린 용기의 총량을 유지하기 위해 또 하루하루를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 격려하며 사는 것. 그 기초대사량은 영원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응원하지 않으면 빠르게, 허무하게 한 움큼씩 줄어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용기의 기초대사량이 얼마일까? 사람마다 몸의 상태가 다르듯이 그 수치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기초대사량을 늘리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구겨진 표정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들어올리는 동작을 하는 듯 대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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