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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Jun 23. 2024

|무제

 네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나는 멀어지는 너를 뒤로하고 적막을 향해 걸어갔다. 뺨을 타고 떨어지는 감정의 비음이 나를 붙잡지만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무거워진 두 발을 겨우 들어 올리며 터벅터벅. 나는 네가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나에겐 너무 아팠던 말. 이어질 수 없는 것. 그런 줄 알면서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는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괴롭힐 테니까. 어긋난 조각은 더없이 날카로워서 나는 계속 뚝- 뚝- 피를 흘리게 되겠지. 그래서 널 지우고 싶었다. 정말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면 더 이상 너로부터 상처받을 일도 없어질 거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긴 시간이 아픔을 치료해 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마음으로 아주 긴 시간을 여행한다. 현실의 일 분 일 초가 내 안에서는 하루, 한 달 그 이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걷기를 반복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너를 짓이기면서. 너는 그 오랜 걸음에 결국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가루가 되어 내가 없는 어딘가로 흩어지기를. 바랐지만 그것 또한 욕심이다. 욕심은 되려 화를 부른다. 잘게 부서진 너는. 그렇게 바람을 타고 안개가 되어버린 너는. 나의 숨으로 다시 내 안에 스며들어 버렸으니까. 나비가 날갯짓하듯 그 미약한 바람으로도. 너는 결국 내게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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