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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May 27. 2024

|달을 사랑한

 유난히 태양이 뜨겁다. 가능했다면 태양을 피해 그늘로 숨어버렸겠지만 이미 이 땅에 박혀 좋든 싫든 발밑에 묶여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나는 태양이 싫다. 마주 보기에는 눈부시기만 하고 그 실체는 볼 수도 없는 것임에. 그저 따스한 빛 한 줌을 위하여 나는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고개 들지 않고 태양을 하늘 위로 밀어내는 것. 나로 인해 만들어진 그림자 속에 숨어 밤을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어두운 밤이 오고 모두가 잠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고개를 바로 든다. 방금 전의 나처럼 다른 이들은 모두 저물었다. 아, 이제 나만의 세상, 나의 세상.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달. 나는 태양의 빛을 품은, 무채색의 달을 사랑했다. 


 달빛이 나를 파고든다. 유려하게 흘러내리는 빛줄기. 집중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따스함. 맹렬히 타오르지 않는 것이 좋았다. 타오르는 것은 꺼지기 마련이다. 설령 영원하다 할지언정, 나는 그 불꽃에 몸을 던지고 싶지 않다. 나의 천성은 따듯한 물에 가깝다. 뜨겁게 타오르지도 않는, 그렇다고 마땅히 냉정하지도 않은. 결코 영혼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언제나 은은하게 그저 평범하게. 하지만 조금은 인간적이게. 다른 이들은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는 빛을 좇아 나는 밤에 닿아 있었다.


 나는 축복받은 존재.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사랑하는 달이 부서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였으니 나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어림짐작을, 그렇게 확신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부서진 들 어떠한가. 부서진 달의 조각들이 반사하는 은은한 반짝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부서져버린 너조차도 나는 사랑하고 마는 거다.


 어질게 무너지고 싶다. 나라고 한들 매 순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낯이 싫어 밤에만 고개 드는 나는 이미 세계의 절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데. 그럼에도 나는 무너지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것을 눈에 담으며 무너지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하늘에 있지만 나는 죽는 순간 고개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내가 마지막에 보는 건 달이 아닌, 흙이라는 것. 어떤 이는 말한다. 사랑은 마음으로 보는 거라고. 사랑하는 그녀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잖냐고.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욕심쟁이라서 그걸 눈으로 보고 싶어 할 뿐이다. 거스를 수 없다 말했던 천성을 단 한 번, 거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아끼고 아끼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쓰게 될 것이다. 눈을 감는 날, 지상이 아닌 천상을 보며 죽겠노라고.


 어떻게 되었든 너보다 내가 먼저 떠난다는 건 기정사실화된 이야기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법과, 너를 사랑하는 이유, 우리가 끝에 헤어지게 될 방법까지도. 나는 예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비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너를 사랑하겠지만 네가 밉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이중과 모순에 너조차도 헷갈리며 머리 긁겠지만 뭐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나는 이런 존재인걸. 그저 달을 사랑하여 밤 속에 자리 잡았고 밤을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꿈을 꾸게 된 것을. 


 내가 살아 있고 달이 살아있는 순간에. 태양이 빛을 잃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달을 사랑할 것이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빛나는 달이 아니라 무채색의 상처가 많았던 너였을 뿐이니까. 어쩌면 그 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너를 끌어안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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