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방종의 한 끗 차이
자유, 자율, 주체성... 우리 사회에서 제일 숭상하는 가치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가치체계의 우위를 점함에 따라 선호하는 직장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단편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인 리더 밑에서 일하기를 꺼린다. 그들은 자율을 보장하기보다는 통제와 명령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고 있다. 권위주의의 타파, 개인의 창의성 존중, 하향식 명령체계에서 수평적 질서 성립 등등 기업과 정부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조직을 개편하고 있는 추세이다. 기존의 조직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더 다양하고 혁신적인 문제 해결법이 등장한다는 사회학자들의 논문들도 이러한 변화를 옹호한다.
그러나 나는 반문하고 싶다. 아이비리그를 나온 IT 천재들 말고, 대기업에서 모셔가는 엘리트들 말고 그저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마시는게 제일 즐거운 평범한 사람들한테도 자율성은 더 높은 생산성을 약속해줄까?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로서 얘기하자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방학이 다가오면 으레 그렇듯이 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일과표를 작성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살고싶은 하루하루를 일과표에 꾹꾹 눌러 적으면서 더 나아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루 30분 독서, 2시간 동안의 공부, 10시 취침 등등 일과표만 보면 인간 교과서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인간교과서의 모습은 일과표를 작성할 당시 그들의 머릿속에만 잠깐 존재하는 환영일 뿐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밤새 게임을 하느라 아침해를 보고 잠에 들기도 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가지 않는 날도 수두룩해진다. 공부는 커녕 펜을 들지도 않아서 개학 이후에 글 쓰는걸 어색해하는 급우들도 숱했다. 우리를 겨우 사람답게 지탱해주던 규칙의 강제성이 방학을 맞아 사라지면, 그때마다 우리는 손 쓸 새도 없이 나태와 자극의 늪으로 빨려들어갔다.
규칙의 강제나 권위주의 없이도 자신의 할 일을 인지하고, 또 계획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필자는 선천적으로 계획적이고 실천력이 강하며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진정 천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유형은 학습능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어떤 분야든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결과를 낳는다. 해야할 일에 제대로 집중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가로축으로 둔 정규분포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운데에 위치한다. 시야가 좁고 집중력이 높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마쉬멜로우를 가만두지 못한다. 당장의 자극과 즐거움이 주는 확신이 미래의 불투명한 성취보다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율은, 멀끔한 이름 뒤에 숨은 방종이라는 독이다.
만약 자신이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집중력도 높지 않으면서 동시에 커다란 동기도 갖고 있지 않다면 일단 상사나 선험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길 바란다. 그들이 해주는 조언과 과제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꼰대짓'이 아니라, 스승이 친히 베풀어주는 '가르침'일 수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