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갖고 있는 자산이 꽤 되었다. 나는 종잣돈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부동산을 더 샀다. 3천만 원이 생기면 수도권의 아파트를 대출을 받아 샀고, 1억 원이 생기면 내가 살 집을 갈아탔다. (그 당시만 해도 부동산 대출 규제가 느슨했다. 새로운 대출을 받기 위해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아도 됐고, 대출 한도도 70%로 넉넉했다.)
그렇게 늘린 자산이란 당연히 빚더미뿐이었다. 전체 자산의 70%가량이 은행 빚이었다. 요즘의 표현으로는 그 당시의 나는 투기꾼이었다. 내가 살 집도 아니면서 부동산 보유를 늘려가고,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지금이었으면 꽤나 손가락질받았을 테다. 아파트를 살 때마다 ‘정 안되면 내가 들어가 살지’라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사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내가 살지 않는 매매라면 지금은 투기의 행태로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나의 선택에 확신이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투기꾼이었다고 할지라도 나라고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이렇게 저렇게 집을 샀어요’라고 지금이야 쉽게 설명해버릴 수 있지만, 그때는 아파트도 오피스텔도 한 채를 살 때마다 수백 번 고민했고 잔금을 끝내고 나서도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짓인지’라고 되묻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몰랐고 만일 잘못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거나 공실이 생기게 된다면 모든 손실은 고스란히 나에게 지워진다. 한순간에 나라는 개인이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부실한 재정이 되는 상황. 연봉 3천만 원 받던 성실한 직장인에게 지워진 빚이 폭탄이 되어 버리는 상상을 할 때마다 두려웠다.
그런데 이런 소심이(?) 투자자에게 더 무서운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세입자와의 불화였다.
그곳은 투자 3년 차쯤에 매매했던 한 수도권 아파트였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 담보대출의 대출 이자는 30만 원가량이었다. (매월 40만 원가량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30년이나 된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성한 곳이 많지 않아 새 세입자를 들이기 전에 이곳저곳을 수리하면서 수리비가 꽤 들었다.
부동산 상승은 더뎠다. 그때만 해도 매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가가 확 하고 튀는 일은 없었다. 원래도 난 내 부동산에 단기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자를 하는 건 아니었기에 기대도 없었고 실망도 없던 상태였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가지고 있던 아파트였다.
40대 중반으로 보였던 세입자는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다고 좋다며 감사를 전하던 분이었다. (저층이라 저렴하게 세를 주던 상태였다.) 계약 날만 해도 우리 서로는 하하 호호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를 했었는데 문제가 생긴 건 약 반년 정도 지나서부터였다. 월세가 한 달, 두 달 늦더니 반년 정도가 지나자 아예 입금을 하지 않았다. 처음 연락할 때만 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입금을 약속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세입자의 사업이 잘 될 수 있게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변명도 몇 달에 걸쳐 쌓이다 보니 머지않아 입금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연락도 닿지 않았고 찾아가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서 확인을 하려고 해도 낮에는 거의 보이지 않고 저녁에만 출입하고 그마저도 홱 지나가버려서 말을 걸지 못한단다.
아찔해졌다. 매월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이자는 은행에게 부탁을 하더라도 미뤄주지 않는다. 세금을 걷는 국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지만... 보유세는 지방세와 국세가 둘 다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나는 싫은 소리를 잘못한다.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이 성격은 이번이야말로 그 단점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일단 연락이 돼야 싫은 소리든 좋은 소리든 할 수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속 앓는 기분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투자자는 원래도 외롭다는데 그때만큼 외롭고 괴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해결할 방법은 막막했다. 잠 못 이루고 한참을 커뮤니티의 익명의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은?결국 강제집행 ‘직전’까지 가서야 세입자와 끝이 났다. 이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렸다. 강제집행까지 가는 데에 드는 비용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던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당시에 하필이면 사고도 당해서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채 세입자와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세입자는 떠나는 날까지 나에게 (내 집에게) 저주를 퍼붓고 떠났다. ‘재수가 없는 집’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가진 부동산 하나하나 옥석을 고르듯 신중하게 선택했고, 그 모든 집들을 정말 진심으로 내 자식인 듯 여겼던 투자자다. 그래서인지 세입자의 그 마지막 한 마디를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내 심장을 후벼 판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월세를 잘 두지 않았다. 두더라도 세입자의 명함을 받았다. 최소 회사원, 그리고 꼭 연락이 잘 닿을 수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나서야 계약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소심한 이 집주인은 세입자의 연락이 두렵다. 투자 기간이 8년이 넘었으면 단련이 좀 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도 아직도 그렇다.
투자자 지인 중에는 세입자의 연락이 힘들어서 투자한 집을 빈 집으로 두는 사람도 있다. 그분도 나랑 똑같은 경우였다. 세입자와의 불화로 꽤나 고생하고 나서 그 후로는 차라리 빈 집으로 두는 것이 속편하다는 것. '살 집'도 아닌데 여러 채를 들고 있는 투자자는 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런 속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