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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Oct 18. 2020

첫 집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 투자의 시작은 ‘내 집 마련’ 에서부터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안전하고 포근한 집, 그것은 대부분 좋은 동네의 아파트이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평생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내 집 마련을 한 후에는 그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투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파트 1채는 투자가 아니다. 방어태세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 유의미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내 집 마련부터였다. 그리고 차익을 떠나서 가장 의미가 깊었던 투자도 내 집 마련부터. 

내가 부동산 투자를 처음 시작한 것은 역삼동에 있는 오피스텔이었지만 이것이 내게 의미 있는 수익을 내주지는 않았다. 그 후 매입한 아파트는 수중에 있던 돈에 맞추어 수도권에 위치한 낡은 아파트였는데 ‘정 안되면 들어가서 살지’라는 목적도 있었으므로 반 정도는 내 집 마련의 태도도 있었다. 물론 이 집도 큰 수익은 없었고.

그렇게 2채 정도를 더 거친 후 나는 말 그대로 우리가 살 '내 집 마련'을 했다. 잔금을 치르며 이사일자를 정하는 그 순간은 그동안의 어떤 등기보다 값졌다.


‘아, 이제 우리에게도 살 집이 생겼구나. 같이 살아갈 내 집.’


그렇게 들어간 나의 첫 집은 20년 된 마포구의 한 아파트였다. 아주 낡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집은 전면 대공사를 했다. 샷시, 바닥, 조명, 도배, 몰딩, 주방, 화장실, 현관, 문 교체, 붙박이장 등. 다 새것으로 교체하는 올 리모델링이었다. 기간은 2주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우리는 2주간 친구네 빌라에서 신세를 졌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또 고마운 친구다. 이래서 난 늘 내가 인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사기간 동안 순탄치는 않았다. 샷시 유리가 깨지지를 않나(이래서야 살면서도 유리가 튼튼할지 괜찮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냉장고장을 잘못 맞춰서 냉장고가 안 들어가지를 않나…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자잘한 문제들을 고치느라고 꽤나 애먹었다. 안 그래도 성격이 꼼꼼한 편인데, 100% 완벽할 수 없는 인테리어 현장에서 내 기준과 현실의 수준을 맞추느라 성질 좀 버렸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내 투자 기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라면 바로 이 내 집 마련에 따른 모든 순간들이었다. (가장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순간은 건물을 살 때.) 부동산 등기를 할 때마다 모든 집은 ‘내 것’이 되는 것은 확실했지만 ‘나의 24시간을 채워줄 곳’으로는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내가 갖고 싶었던 가구. 내 집 마련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것이 한평생 일궈 마련한 그 집이든 투자자가 거쳐간 그 집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실상 첫 내 집’에서 투자를 계속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고 그리고 작년에 매도했다. 철저하게 세금이나 향후 투자를 고려하면서 지은 결정이었지만 매도를 할 때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돈을 많이 벌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애정이 깃들었던 집이었기 때문이리라.




최근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첫 신혼집을 매매해서 인테리어를 계획하고 있다며 연락을 해왔다. 내가 부동산 투자하는 것을 알고 인테리어의 경험도 몇 번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의 집은 지어진지 오래지 않아 깨끗한 편이었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춰 바꾼다고 했다. 친구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오는데 나의 4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했던 고민들, 해야 했던 결정들 모두 친구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꽤나 어렵고 골치 썩는 일임에도 친구의 말투에서는 행복이 떠올랐다. 이 또한 그때의 나의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그렇게 나 역시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성심성의껏 도왔다. 잠시나마 나 역시 설레고 벅찼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친구의 첫 집 스토리를 응원하고 있다.


가끔 마포에 들릴 일이 있어 내 첫 집을 지나칠 일이 있으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아련해진다. 이렇게나 ‘첫 무엇 무엇’은 꽤나 감성적이다. 고맙고 그립고 훈훈하다. 고마웠던 내 첫 집, 첫 아파트.



나는 지금 회사 근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산다. 새 아파트라서 시설도 좋고 깔끔하고 주차도 널찍하다. 그런데도 이 첫 집의 기억이 강렬해선지 나는 다시 내가 살 적정한 집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제는 집값이 많이 올라서 훨씬 작은 평수의, 훨씬 낮은 급지의 동네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살아갈 곳’을 살펴본다는 점에서는 그 두근거림은 비슷하다. 하지만 현실은 취득세 13.2%와 대출 규제에 가로막혀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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