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통보 당일, 앗, 미뤄졌다.
'그래, 오늘 퇴사한다고 말할 거야.'
내 나름대로의 굉장한 각오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샤워를 하며 이를 악물고, 옷을 입으며 손을 꽉 쥐었다. 출근길 핸들을 잡은 손은 유독 떨렸다. 단지 '말을 할 거다'라는 생각만으로 심장이 이렇게나 쿵쾅거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하튼 나로서는 '엄청난 발언'을 할 것이니, 그 마음가짐에 걸맞게 출근도 1시간 일찍.
어라, 그런데 늘 새벽부터 출근하시는 팀장님이 자리에 없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오늘 팀장님 휴가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쿵쾅거리며 나대다 못해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만든 심장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한편으론 아쉽고, 한편으론 안도감이. 여기서 왜 안도감이 들었는진 모르겠다. 금요일을 포함해 주말까지 3일은 이 긴장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서일까. 난 고작 회사원 주제에 뭐가 이렇게도 걱정되고 긴장되고 힘든 걸까. 회사에서는 나란 사람은 그저 그런 톱니바퀴일 뿐인데. 내 주제를 잘 모르는 건 아직 여전하다.
그리고 기죽어서 나오는 터덜터덜 퇴근길. 그날은 동시에 퇴사했던 2명의 전 동료를 만나는 날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일정을 잡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둘은 이전 브런치의 글 이후로 처음으로 퇴사를 고백한 상대편이 되었다. 내 말을 듣고 그 둘은 매우 놀랐다. '적어도 나 만큼은' 퇴사를 안 할 줄 알았다나. 왜일까? 내 태도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물씬 느껴졌던 걸까. 내가 실제로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일. 그게 사람들에게도 느껴졌던 걸까.
전 동료는 지인의 이야기로 말을 이었다. 친한 지인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는데 겉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그런데 당사자에게 이상한 행동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울증 증상이라고 했더란다. 그것은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 매우 눈에 띄는 행동이었단다. 바로 '새로 이사한 집에서 이삿짐을 풀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채 자신은 거실 한 켠에서만 생활했다'는 사실.
무기력,
무력감,
귀찮음,
불안,
초조.
이것들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리고 이삿짐을 풀지 않았다던 그 지인의 증상을 생각해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내버려 뒀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집에 와서 꼼짝 않고 누워있던 나를 떠올려본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이 나던 그때를 생각해본다. 최근 들어 유독 동료들에게, 상사에게, 후배들에게 못된 말을 내뱉던 내가 생각났다. 수많은 각종 일을 '돈도 안 되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던, 그렇게나 기고만장하고 오만했던 나를 돌아본다.
못났다, 참으로.
그리고 핑계를 대본다. 못돼 처먹었던 내 모습은 우울증의 증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익명의 힘을 빌려 고백하고 반성한다. 또 퇴사 전에 꼭 동료들에게 내 언행을 사과할 것이라 다짐한다.
난 사실은 퇴사를 하기 싫었던 거다.
내 일이 좋다. 재미있으니까. 사실 나는 '성덕'이라고 불렸으니까.
하지만 퇴사를 해야만 한다.
내 일이 나를 좀먹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타들어가니까. 내 정신이 메말라가니까. 그렇게 우울증이 나에게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니까.
놔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월요일에 팀장님께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