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미녀 May 26. 2021

퇴사통보했습니다.

진짜 안녕.

야심 차게 각오했던 퇴사 통보가 실패하고 주말이 왔다. 평소와 같은 주말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꿀처럼 달달한 휴일이면서도 아니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니까 '출근병'이 아닌, 그 어떤 종류의 긴장감이 찾아왔다. 왜 이럴까. 난 왜 이렇게도 소심한 걸까.


월요일 알람이 울리고, 수없이 시뮬레이션해본 퇴사 면담을 재연해보며 이 날도 마찬가지로 1시간 일찍 출근.

그렇다, 이번에는 팀장님이 자리에 앉아계셨다. 부지런한 팀장님.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드릴 말씀이 있어 시간 되실 때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


발송 버튼을 누르고 심장이 쿵쾅쿵쾅. 또 나대기 시작한다.

조금 후에 '안 읽음 1 표시'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온 답장.

네.


심장이 더더욱 쿵쾅쿵쾅. 그렇게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8시 반이 되어도, 9시가 되어도, 9시 반이 되어도 '되시는 시간'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이런... 초긴장상태로 계속 있어야 하나. 오지 않는 카톡 방을 열어두고 할 일을 했다.


그렇게 2시간이 되자, 에라 모르겠다, 난 던졌고 오늘 중 언젠간 부르시겠지.라고 체념(?)과 비슷한 감정 상태가 되었다. 다시 평소 하던 대로 업무를 했다. 퇴사 각오를 해선지 어쩐지 일도 잘된다. (바짝 쪼이는 긴장 상태라 그런가?)


그리고 오전 10시 반이 되자 메시지 도착. 다시 심장이 나댄다.


미안. 이제 회의가 끝났네. 로비에서 볼까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일어선다. 출근길에 재연했던 면담 상황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본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저렇게 말씀하시면 대답하지 말아야지 등.


로비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왠지 팀장님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평소에 별로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온 걸로 봐선 당연히 눈치채셨겠지.


"팀장님, 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


음, 대답이 없다. 이런. 열심히 시뮬레이션했던 상황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 침묵을 내가 깨야하나, 하던 차에 되물으신다.


"왜죠?"
"제 건강이 좋지 않아서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 알겠어요."


응? 


이것도 내가 시뮬레이션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아마도 나를 '잡을' 거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답을 혼자서 열심히 되뇌었는데, 이 상황은... 결국 별문제 없이 수락. 전 안 잡힐 거라고요,라고 우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되면 되는 상황.


"죄송합니다."
"000가 죄송할게 뭐가 있어요, 내가 미안하지. 그 후 덕담 어쩌고 저쩌고"
"업무 문제없도록 잘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끝까지 회사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11년 만에, 아니, 35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한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이 회사에서 할 일은 이제 없다.

아무 탈 없이 끝나간다.

끝이 보인다.

탈출구가, 해방의 문이, 시간과 관계의 자유의 길이.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