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후, 차장님과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이런, 회사 사람들이 너무 많다.
1층 회의실로 가보았다. 그런데 이런, 풀(full)이다.
2층 회의실도 마찬가지.
결국 로비로 나와 테이블 한가운데 착석.
내가 퇴사 통보할 것이라는 걸 눈치 채신 듯했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이곳저곳을 찾으러 다니신 거겠지. 로비에 앉으면서도 "여기 괜찮겠어?"라고 말을 건네시며 앉았으니.
"차장님..."
"어떡할 거야?"
"네?"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왜 미리 의논 안 했어?"
역시 눈치가 백 단이신 차장님은 다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다닐 것인지, 그 후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아... 알고 계셨군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나는 많은 사람들을 거쳐와 봤잖아. 000가 달라진 모습이 꽤 오래된 것을 보고 알았지. 그만두려는 사람들한테는 패턴이 있더라고."
"하하"
할 말이 없어 웃었다. 퇴사자의 패턴이라니. 한 마디 안(못) 건네시다가 최후의 통보 타이밍에. 어쨌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아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아니, 그런데 퇴사하는 건 난데, 왜 상대방을 걱정하고 있었던 거지? 화들짝 놀라는 차장님의 모습, 근심 걱정이 가득한 그의 모습이 없는 것이 한편으론 다행이고 한편으론 의아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고민이었어."
"?"
"나도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 많았거든, 최근. 그래서 나도 고민이 되더라고."
"?????"
"내가 이렇게 고민할 정도였는데, 000는 어땠겠어. 그러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이야."
"아, 네..."
이렇게 훅 들어오시면 안 되지요. 내가 더 놀랐다고요.
차장님은 나를 이해한다며 반 장난식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나도 안다. 차장님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최근 우리(?)가 맡았던 일이 꽤나 잘 되면서 관련 사업이 확장 중이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사람이 없어' 안달인 것. 나만해도 두세 차례 다른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나만 해도 이런데, 총괄 책임자인 차장님은 어땠을까. 그리고 특히 올해 들어 '말도 안 되는' 강도로 채찍질을 하는 이 회사를 보고 그런 생각을 왜 안 했겠느냔 말이다. 사실, 현재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사이에 내가 선수를 친 거다.
"내가 제일 미안해."
"아녜요, 차장님이 뭘..."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진작 서로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000에게 의지한 게 그동안 너무 많았어. 익숙해져서 더욱 그랬나 봐. 당연히 000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안일해졌었나 봐. 그냥 잘하니까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내 탓이야,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전혀 아닙니다. 저는 괜찮아요."
"회사보다는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000을 잡을 수가 없어. 그래서 더 안타깝고."
"..."
아무도 막아주지 않던 발령,
내가 스스로 항의해서 다시 얻어낸 자리,
그리고 중요 프로젝트를 끝내고 또 쳐내도 쌓여가는 새 업무들.
때로는 그 일이 너무 버거워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오는 건지' 억울해서,
힘겨운 일이 겹칠 때 (내 눈 앞에서) 방어해주지 않는 상사가 야속해서,
한 때는 차장님을 미워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차장님도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차장님만 할 수 있던 업무들만 해도 한계치였던 것이다.
차장님에게만 주어지는 무거운 일들도 다 혼자 짊어졌던 것이다.
나는 그걸 몰랐다.
나만 힘든 줄 알았다.
차장님도 나랑 똑같은 회사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