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완전한 자유시간.
머릿속에는 다음 일이 없다. 다음 스텝이 없다. 프로젝트도, 숫자도 그 어느 것도 남겨져 있지 않다.
퇴사를 하면 내가 해야 할 다음 일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있다. 그것이 내가 정확히 원하는 일인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기존의 루틴은 이랬다. 매일 아침 5시 반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글을 끄적이거나 투자 공부를 하고, 8시에 집을 나선다. 출근을 하고 모닝커피를 마시고 오전 업무에 돌입한다. 12시, 점심 약속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도시락이나 근처 카페에 가서 때운다. 그러면서 블로그 포스팅을 뚝딱 해치우고 복귀. 오후엔 주로 회의가 많다. 그러다 3시 전후가 되면 꾀를 부리며 메신저 수다도 떨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기도 한다. 6시 퇴근 후에는 저녁 먹고 투자 공부에 전념. 가끔은 늦게 끝나는 남편을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가기도 한다.
앞으로의 루틴이 어떨지 고민해본다. 아침 5시 반 기상은 유지한다. 똑같이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글을 끄적이거나 투자 공부를 한다. 그리고 8시에 집을 나서는 일은 없다. 아침 루틴이 조금 더 이어진다. 집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린다. (왠지 카페인 양이 부족할 듯싶다.) 그리고 할 일은 없다. 그래서 정해야 한다. 오전엔 무엇을, 점심은 어떻게, 오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마냥 늘어져있거나 루틴이 깨져선 안된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우선 정해진 것부터.
강의를 신청했다. 평일 오후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던, 그리고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했던 부동산 강의. 약 2년 넘게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들을 수 있게 됐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6시. 2개월 과정이다.
PT를 신청했다. 매주 2회, 점심 직전의 시간대로. 코로나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도 바지런히 하면서. 선생님의 집에서 하는 것이라 아마도 환기 같은 것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둔 것.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분석하는 시간을 할애해볼까. 책장을 덮고난 후 책 읽는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닌, 찬찬히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곱씹는 시간을 갖는 것. 무조건 1권의 책에는 1개의 서평(최소 1천 자 이상)을 남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볼까.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을까. 혼자 생각할 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다가 우연히 남편이 건넨 한 마디에 팍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그것은 바로 디자인.
나는 미적 감각이 제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전무하다. 블로그에 걸 간단한 배너라도 만들어볼까 해서 템플릿과 요소와 색상 모두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만든 결과물은.. 정말 못생겼다. 색이 어색하고 배치가 어수선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항상 디자이너들을 존경해왔다. 디자이너가 만든 어떤 것을 볼 때마다 아름답고 적절하고(과함이 없고) '아니 저 조그마한 곳에 이런 것을!'이라 감탄하는 창조성까지. 늘 부러워했던 것들이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예술적인 재능은 없기에 디자인을 배운다고 한들 그럴듯한 결과물은 안 나올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디자인을 조금이라도 알아간다는 것, 평소에 정말 동경해왔던 영역. 그것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난 기쁠 것이다.
그러고도 시간은 많이 비워질 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나태하게 살아도 되는가' 아니면 '백수가 과로사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어떤 상황도 벌어져도 괜찮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것이니까. 내가 갖고 있는 24시간이니까. 이제는 회사에 바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시간이니까.
자유시간은 달콤하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여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