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경제적인 능력이 생긴 것 같아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려나 했는데... 나의 열정을 다 내놓지도 못했던 순간에 임신이라는 큰 장벽을 만났다.
어찌해야 할까? 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의 꽃다운 20대의 청춘을 불태울 것인가? 아니면 엄마의 길을 갈 것인가?
청춘을 선택했을 때 나는 어떤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 인생 안에 현재의 내 꿈인 유치원선생님도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청춘 안에는 지금 현재의 선생님은 있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선생님은 없었다.
하나의 생명을 짓밟아버리고 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새싹들을 키워내며
웃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조금 빨리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자신이 없었지만
내게 온 생명을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나의 삶도 존중받고, 하나의 생명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해내고 싶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20대의 첫 이벤트는 시작되었다.
혼자만의 이벤트가 될 수 없기에 부모님들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11월로 미뤘고, 12월엔 연말에 바쁘게 일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 미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그때도 엉뚱하게
생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1월에는 새해 첫 시작이라 미루고, 1월 중순의 어느 날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때 부모님은 직감하셨던 걸까?
아빠의 나지막했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날 남편과 함께 들어서는 친정문은 문턱이
높아 보였다.
“아버님. 어머님. 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축하해! 편히 앉지 왜 그러고 앉아있어~”
“드릴 말씀이 있는데... 뱃속에 아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많이 아껴주면서 살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부모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눈물만 흘렸다.
방문 사이로 혼잣말이 들렸다.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벌써 시집간다고?
시집... 간다고?”
차라리 몇 대 맞았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엄마는 흐느끼며 울었다. 난 그날 나를 위해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엄마의 눈물 뒤로 아빠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말씀하셨다.
“출근하는 뒷모습 볼 때마다 힘들어 보여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홀몸이 아니어서 그랬구나. 얼마나 힘들었어?”
라고 하시며 안아주셨다.
난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제대로 안기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방에서 울던 엄마를 불렀다. "당신도 그만 울고 나와요. 애들 축복기도해 주게"
나와 남편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시던
아빠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지 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축복해 주라고 하면서 온 맘을 다해 기도해 주셨다.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대학 졸업 후 6개월 동안의 짧은 자유를 만끽했다.
이제는 예비신부이자 예비엄마가 되었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은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던 9월 어느 날 스물셋의 나!
그날의 나에게 찾아가 다시 한번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안아주고 싶다!
어쩌면 혼자서 즐기지 못했던 젊은 날이 그리울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때가 너무도 힘들었겠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