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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Mar 18. 2024

20대의 첫 이벤트

내 인생 최고의 선택


내 나이 스물셋.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니던 9월 어느 날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경험한 지 반년 지났는데 임신이라니 

오 마이 갓!


이제 좀 경제적인 능력이 생긴 것 같아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려나 했는데...
나의 열정을 다 내놓지도 못했던 순간에 임신이라는 큰 장벽을 만났다.

어찌해야 할까? 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의 꽃다운 20대의 청춘을 불태울 것인가? 아니면 엄마의 길을 갈 것인가?
청춘을 선택했을 때 나는 어떤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 인생 안에 현재의 내 꿈인 유치원선생님도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청춘 안에는 지금 현재의 선생님은 있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선생님은 없었다.



하나의 생명을 짓밟아버리고 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새싹들을 키워내며
웃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조금 빨리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자신이 없었지만
내게 온 생명을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나의 삶도 존중받고, 하나의 생명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해내고 싶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20대의 첫 이벤트는 시작되었다.
혼자만의 이벤트가 될 수 없기에 부모님들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11월로 미뤘고,
12월엔 연말에 바쁘게 일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 미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그때도 엉뚱하게

생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1월에는 새해 첫 시작이라 미루고, 1월 중순의 어느 날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때 부모님은 직감하셨던 걸까?

아빠의 나지막했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날 남편과 함께 들어서는 친정문은 문턱이

 높아 보였다.
“아버님. 어머님. 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축하해! 편히 앉지 왜 그러고 앉아있어~”
“드릴 말씀이 있는데... 뱃속에 아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많이 아껴주면서 살겠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부모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으시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눈물만 흘렸다.
방문 사이로 혼잣말이 들렸다.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벌써 시집간다고?

시집... 간다고?”
차라리 몇 대 맞았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엄마는 흐느끼며 울었다. 난 그날 나를 위해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엄마의 눈물 뒤로 아빠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말씀하셨다.
“출근하는 뒷모습 볼 때마다 힘들어 보여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홀몸이 아니어서 그랬구나. 얼마나 힘들었어?”

고 하시며 안아주셨다.
난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제대로 안기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방에서 울던 엄마를 불렀다.
"당신도 그만 울고 나와요. 애들 축복기도해 주게"

나와 남편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시던

아빠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지 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축복해 주라고 하면서 온 맘을 다해 기도해 주셨다.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대학 졸업 후 6개월 동안의 짧은 자유를 만끽했다.
이제는 예비신부이자 예비엄마가 되었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은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던 9월 어느 날 스물셋의 나!
그날의 나에게 찾아가 다시 한번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안아주고 싶다!


어쩌면 혼자서 즐기지 못했던 젊은 날이 그리울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때가 너무도 힘들었겠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장 아름다운 선택으로 빛나게 해 준

그날의 나에게 고맙다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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