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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Mar 30. 2024

청소 하기 싫어 선택한 일.

집사 대신 워킹맘

남편은 1주일에 한번,

혹은 2주일에 한번 씩 만날 수 있었다.

나 홀로 아이를 키우며 그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한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만큼 무모했고, 제 아무리 좋은 생각의 힘을 믿는다 해도 힘들었다.


남편을 따라 발령난 곳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불가능했다.

남편 한 사람에게는 관사가 제공 될 수 있었으나 가족에게는 관사가 제공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조금 더 넉넉했다면 따라 나설 수 있었겠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신혼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우리는 좀더 현실적인 선택을 했고, 남편은 낯선 도시에서 홀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따뜻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시댁 방 한켠에서 아이 뒤척임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밤새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를 품에 안아 우유를 먹이고 나면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엄마 다녀올게. 애기 잘보고, 청소만 해놔라”

“네~어머니”


짧은 인사를 건네고 나면, 시댁에는 아이와

두 사람 뿐이다.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 학문으로 배웠던 유아교육이 빛을 봐야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시간도 없었다.

아이와 눈 맞추며 이야기하고, 노래 불러주고, 마사지 해주듯 쓰다듬고 한참을 놀고나면,

본래 기질이 순한 아이였던 첫째 아이는

소리 없이 잠들곤 했다.

잠든 아이를 뒤로 하고, 젖병을 세척하고, 옷 몇가지를 세탁하고 나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머님이 말씀하셨던 청소 하나!

시어머니가 중요하게 여기시는 집 청소다.


나는 청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 한 적도 없고, 가끔씩 더러워지면 하는게 청소였던 나에게는 매일 청소를 해야 한다는게 부담이었다.

부담을 갖고 있는 일은 제대로 해내는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이때 느꼈던 것 같다.


걸레 하나를 손에 움켜쥐고 시부모님 방부터 닦았다. 먼저 시부모님 방을 닦고, 거실을 닦고 나면 머리카락 두 세 가닥과 먼지 조금이 눈에 보였다.

내가 청소를 깨끗하게 했기 때문에 걸레에 이것만 묻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눈에 보이는 즉시 말끔하게 청소하신 시어머니 덕분에 내 걸레엔 머리카락 두 세 가닥이 전부였던 것이다.

“애기 잘보고, 청소만 해놔라.”

하루 24시간 중에서 내가 완벽하게 해내야 할 일은 이 두 가지 일 뿐이었다.

아이는 온종일 내 품에 안겨만 있었던게 아니라 잠도 자고, 혼자만의 놀이 시간도 즐겼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청소와의 대면은 늘 힘들었다.

내가 아무리 청소를 잘해 놓는다 하더라도 고무줄이 놓쳐버린 내 머리카락은 삼자대면 하듯 시어머니와 마주한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타났다.

분명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짜잔 하고, 시어머니 손에 들려 나타나곤 했다.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시작한 청소전쟁은 주말부부라는 현실적인 고충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시집살이 참견하는 시누이 마냥 매번 등장하는 머리카락 덕분에 더 이상 청소전쟁을 이어갈 수 있는 전투력이 점점 소멸 당하는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을 볼 때 마다 나는 청소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000어린이집이예요. 선생님~지금도 구직활동 중이신가요?”

“네? 아닌데요. 출산한지 얼마 안되서 구직활동 안하고 있어요”

“그러세요. 실례지만 아이가 몇 개월 인가요?”

“6개월이예요.” 어짜피 나와는 상관없는 취업 관련 전화라 생각했기에 무심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에 한톤 높아진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우리 어린이집에서 영아반 선생님 모집하고 있는데...아이랑 같이 와도 되거든요”

“네? 아이랑 같이 와도 된다고요?” 나 역시 한톤 높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요. 시간될 때 면접 보러 한번 나오세요”

전화를 끊고 난후, 잠시 고민했다.

‘아이가 6개월인데...일을 할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던 일이어서 생각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어짜피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 다른 아이 돌보며 내 아이도 함께 돌보면 되는거겠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내 마음은 점점 일을 시작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이와 온전히 보낼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으로 흔들리던 마음도 있었지만

나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건 그날 밤 마주한 머리카락 덕분이었다.

“내가 너 꼴보기 싫어서라도 나간다. 항복!

  나 이제 청소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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