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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Apr 05. 2024

살기 위해 미친 척했다.

출산 비하인드 스토리

넷째 임신 사실을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역시 축하해 주실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처절했다.

“야야. 너 진짜 이혼하고 싶어? 왜 이렇게 자식 욕심이 많아.

 너도 네 인생 살아야지. 언제까지 애들 뒤치닥거리만 하려고 그래.

“제 인생도 살고 있어요.”

“네가 뭔 네 인생을 살아 이것아! 검사나 의사!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은 애 하나도 낳을까 말까인데... 미련하게 애를 낳기는 뭘 또 낳아.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미련한 사람이나 애 많이 낳는 거야.”

“잘 키울 수 있어요. 열심히 돈 벌면 되죠.”

“애비랑 네가 지금까지는 뭐 열심히 돈 안 벌었냐? 지금도 그렇게 살면서!!

내가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하겠어. 요즘 세상에 누가 애를 넷이나 낳냐?

애들 많이 낳고 힘들다 보면 그러다 이혼하는 거야”

"너 진짜 애비랑 이혼하고 싶어?"

“......”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시어머니 말씀에

짧은 숨소리만 전할 뿐 다른 대답은 할 수 없었다.

“병원 가거라. 알았지? 다른 애들 생각해서라도 병원 가.”




머리로는 분명히 나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마음에서 소용돌이쳐대는 감정들은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역시 머리보다 내 마음이 이겼다.

'그래. 까짓것 이혼하지 뭐. 세상에 어떻게 며느리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지?

어머님 아들 걱정에 그러는 거야 뭐야? 내가 지금까지 일 안 했나?


"어머니! 애가 셋인데... 보육교사 경력 10년 이상이면, 나 진짜 일 많이 한 거거든요?”

어머님께 하지도 못할 말들만 마음속으로

수십 번 외치며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어머님은 신앙인 맞아요? 어쩜 그렇게 어머니 생각만 하세요? 병원에를 가라니...

내가 시어머니한테 그런 말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어머님 정말 너무 하세요.”


너무한 시어머니를 내 마음속에 붙잡고 있으려니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아이를 셋이나 둔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길 바라는 시어머니가 정말 존재할까?

어머니는 그렇게 손주가 싫으셨던 걸까?

이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머님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고 싶어서 미친 척하고, 시어머니가 되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며느리인 내가 미워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란 생각에 다시 한번 서운함이 올라왔다.


넷째를 낳고, 기르면서...

큰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하고,

모든 아이들이 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는

지금은 어머님의 마음이 어떠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아이 넷을 키운다는 것은

꽤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부모의 수고와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있어도 더 해 줄 수 없는 부모마음.

넉넉하지 않은 삶 속에서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자괴감.

네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어머니 역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운 경험이 있으셨던 터라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시련과 고통을 먼저 보았기에 그렇게 모진 말로 경고장을 보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가 부모여서 내 아이를 지키고 싶었듯이...

우리 어머니 역시 부모이기에 나와 내 남편을 지키고 싶으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말이 좀 더 부드럽게 표현되었더라면 오해도 없었을 텐데...

우리 부모님 세대 역시 부드럽고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들으며 자라온 분들이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나란 사람은 이 마음을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로는 안될 것 같아 선물처럼 주어진 아이 넷을 키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 미련한 사람이 되어 시어머니를 평생 미워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의 마음도 알아가고,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아이인 내 마음도 알아가고 있다.

아이와 부모사이, 그 어느 중간 지점에 서서 온전한 사랑을 느끼며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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