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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May 06. 2024

눈치 없이 비 내린 어린이날

빗소리 대신 아이소리

“엄마! 우리 어린이날 뭐 할 거야?”

“엄마~ 동물원을 다시 한번 다녀올까? 설마 작년처럼 비 오진 않겠지?”

10살 딸아이는 5월이 되기도 전에 어린이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매일 같이 초록창에 날씨도 확인하면서 어린이날 어떤 옷을 입을지까지 생각했다.

기다리던 어린이날을 앞두고, 딸아이가 울먹이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번 어린이날에도 비 온대. 왜 맨날 어린이날만 비가 오는 거야?”

비는 언제든 올 수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비가 오면 안 되는 날이었다.

마트를 가거나 동물원을 가는 것 역시 다른 주말에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린이날은 아이의 존재를 축하해 주는 생일만큼이나 특별한 날이었기에 이날은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랐던 날이기도 하다.

괜스레 설레기도 하고,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날이지만, 평소와 비슷한 패턴의 하루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현관문을 나선 아이는 어린이 1호. 고등학교 2학년 큰아들이었다.

평범한 아침처럼 오전 10시에 학원으로 향한 아이는 오후 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시험이 끝난 어린이 2호. 중학생 아들은 PC방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싶다며 점심을 먹자마자 나갔다.

이제 집에 남아있는 건 진짜 어린이인 초등학생 딸과 5살 아들뿐이다.

아들이 문을 나섬과 동시에 빗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이대로 나가도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딸이 말했다.

“엄마, 나 아까부터 몸이 뜨겁고, 목도 좀 아픈 것 같아.”

급한 대로 손으로 이마만 만져보았을 뿐인데도 뜨겁게 느껴졌다.

아이 체온을 재보니 38.7이다.

우리 나갈 수 있을까? 열이 나면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진짜 어린이인 딸은 울상을 지었지만 해열제를 먹고, 열패치까지 붙이자 잠이 들었다.




‘어린이날 비 오는 것도 속상한데, 아이한테 열감기까지 오는 건 뭐야~진짜 너무하네.’

내 마음속에 불평들로 하나, 둘 집 짓기를 하며 적막함마저 들게 하고 있을 때,

막내아들의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영화 볼 거야. 영화 보고 싶어. 카봇 보여줘.”

‘어린이날 집에서 영화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불평만 늘어놓고 있던 나는

그저 5살 막내아들이 요구한 대로 존중하며 들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컴퓨터 스위치를 켰다.

엄마가 스위치를 켠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막내아들은 의자에서 발을 굴러댔다.

화면과 볼륨을 조절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 몇 가지를 접시에 담았다.

아이 얼굴엔 점점 더 안정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오렌지를 한 입 베어 물며 과즙이 흐르는 채로 아이는 말했다.

“엄마, 오렌지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집 안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눈치 없이 내리던 비와 갑자기 찾아온 열감기 손님에 대한 불평이 감사로 바뀌고 나니

아이들에게 편안히 물어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집 밖에서 일정을 마친 큰 아이들이 돌아오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오늘 어린이날인데... 우리 그냥 이렇게 집에 있어서 어떡하니?”

“괜찮아. 나는 그냥 영화 보면서 목욕을 좀 해야겠어.”

“은이가 아프잖아. 어쩔 수 없지. 난 오늘 저녁은 치킨 하나면 돼”

잠에서 깬 딸은 “나는 다음에 엄마랑 단둘이 마트 가는 걸로 할래.”     

우리 집 아이들이 말한 것은 어린이날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화창한 봄날처럼 맑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특별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평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있던 아이의 선택에 대한 존중.

그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더해진 약간의 기다림.

그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불평이 감사로 바뀌었다.

또한 각자 원하는 것을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기에 특별함이 되었단 생각이 든다.

눈치 없이 내린 비를 탓하느라, 불평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어린이날이지만

그 덕분에 아이들의 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년 어린이날 내린 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올해가 되어 깨달았다.

우리 가정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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