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남샘 Jan 25. 2023

세 가지의 나(1)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그 이야기는 삶을 담지 못한다

  ‘피부 밖의 세상’에서 흰곰을 만나는 일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부러 동물원으로 가지 않는 이상 살아있는 흰곰을 눈앞에서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피부 안의 세상’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흰곰을 마주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나’가 ‘피부 안의 세상’에서 흰곰을 만날 때, ‘피부 밖의 세상’의 흰곰을 만날 때처럼 행동한다는데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동물원의 흰곰이 철창 안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만화에 나오는 흰곰처럼 철창을 부수고 뛰쳐나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에 여러 번 가보고 나면 흰곰이 철창을 뚫고 나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흰곰을 보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철창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흰곰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동물원에 여러 번 가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피부 안의 세상’의 흰곰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흰곰에게 익숙해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의 첫 번째 기둥인 ‘마음을 여는 과정(Open)’에 속하는 ‘수용’과 ‘탈융합’이 ‘피부 안의 세상’의 흰곰에게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수용), 한 번의 행동을 한 번의 행동으로 경험하는 것(탈융합)이 우리를 지금 이 순간으로 열어줍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세상을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구성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려 노력하고 이야기에 맞게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들을 해석합니다. 이야기가 빈틈없이 짜여있으면 그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험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촘촘할수록 우리는 이야기보다 삶이 더 큼을 잊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개별 상황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야기가 더욱 견고하게 구성되면, 현재 있는 작은 변화의 가능성들을 놓칩니다. 눈앞에 있는 삶이 아닌 마음에 떠오르는 흰곰에게 주의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가지만, 삶은 스스로 만든 이야기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삶이 자신이 바라는 이야기와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이야기에 깊이 빠진 사람은 자신의 삶에 조금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틀로 가둬지지 않는 삶의 남은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삶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서의 자기(Self-as-Content)’이며, 사람들은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하나뿐인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수용-전념 치료는 기능적 맥락주의를 바탕으로 하며, 행동의 내용보다는 기능에 주목합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행동의 일관성을 갖기 위한 기능을 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와 다른 상담기법들의 차이점은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다른 상담기법들과 달리,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인 기능을 할 때, 그 이야기를 다시 쓰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를 지우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가지고 사는 것이 힘들 때 잠시 멈춰서 거리를 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담지 못한 삶의 남은 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방법은 지금까지 우리가 다뤄온 ‘수용’, ‘탈융합’ 그리고 ‘마음챙김’입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주고 원활하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Lunoma, hayes, & Walser, 2017). ‘나는 합리적이고 유능한 선생님이다.’라는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가진 선생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내용으로서의 자기’는 힘들고 지칠 때에도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학생들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대하면서도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원칙을 가지고 단호하게 훈육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또, 동료교사들에게도 처음의 탐색기를 지나 마음 놓고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에 따라 일관성 있게 살아가면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행동의 뜻이 남에게 전달됩니다. 이처럼 ‘내용으로서의 자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기능을 하기 때문에 유지됩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문제가 되는 순간은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져있을 때입니다. 앞서 예를 든, ‘나는 합리적이고 유능한 선생님이다.’라는 이야기와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이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개별 상황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세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학생들의 표정을 놓치기도 합니다. 또 합리적이고 유능한 자신이 제시한 효율적인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교사들이 불만족스럽고, 그 동료교사들이 자신의 강한 주장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 교실과 연구실에서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나는 합리적이고 유능한 선생님이다.’라는 이야기에 갇혀있을 때는 그동안 해온 행동을 반복할 뿐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잡지 못합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가 문제가 되는 순간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옳고 그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틀렸기 때문에 고쳐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사는 것에 지쳐있음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이야기에 맞춰 다른 사람을 정의 내리고 그 틀에 맞춰 바라보면서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마치 미리 정해진 대본에 있는 대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짐을 알아차릴 때, 지금까지 보지 못한 타인의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에서 거리를 두면 이야기가 담지 못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 우리는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과정으로서의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용으로서의 자기’, ‘과정으로서의 자기’ 그리고 ‘맥락으로서의 자기’가 ‘세 가지의 나’입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작가의 이전글 마음은 말로 생각을 만든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