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노가리를 좋아합니다만...
나는 어려서부터 말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집에서도 그랬고, 학교에서도 그랬다.
어느 정도로 말이 없었냐면, 집안 어른들이 내가 말을 못 하는 아이인가 걱정할 정도로 과묵한 아이였다.
해서 명절날 집안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몇몇은 돈 줄 테니 말하는 것 좀 들어보자, 하기도 했다.
어른들에겐 장난이었을지 모르나 어린 나에겐 폭력이었다.
그러나 울지도 않고 나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 그때도 나는 '내 할 말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마음으로 항변하고 있었던 걸까.
말이 없다는 소리는 정말이지 살면서 지겹게 들었다.
왜 말이 많아야 하는가? 정말 말이 없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결격사유가 되는가?
내가 정말 잘못됐고, 모자란 것인가, 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해서 말하기를 노력해 본 적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 이 말 저 말 다 토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후회가 밀려왔고 허탈했다.
내가 뱉은 말 중 8할은 안 해도 될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 경험으로는 말 많은 끝에 문제가 생겼지, 말이 없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분위기를 맞추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개 그런 자리는 1대 1로 만나는 일은 드물어서 내가 아니어도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말주변이 없기도 하고, 순발력이나 재치가 있는 편이 아니어서 빠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끼는 것도 어렵고 또 불편해서 거의 듣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또, 사람들은 묻는다. 대체로 신나게 흘러가던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 소위 '마가 떴을 때' 말이다. 그 침묵의 틈을 잠시도 참지 못하는 이들이 내게로 화살을 돌려 묻는다.
"그런데 그쪽은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말을 안 하니 속을 알 수가 없네.." "재미없죠?"
심지어 무례의 끝장판으로 "하루에 몇 마디나 하고 살아요? 입에서 군내 안 나요?" 같은 말.
그 말에 어떤 답을 해줘야 할까.
그렇게 묻는 사람들을 보는 내 입장은
"원래 그렇게 말이 많아요? 하루 중 언제 입 다물고 있어요? 입에서 단내 안 나요?" 지만
한 번도 그렇게 그들에게 물은 적은 없다. 각자의 성향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을 한심하고 답답하게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그랬다.
주변에서 충고처럼 내향적인 성격을 바꿔야 사회생활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는 말을 하도 들어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성격이 불만이었고, 나도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하고 싶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도 변함없이 내 말의 분량을 간섭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애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말을 안 하고 살면 답답하지 않냐고, 혹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사람들을 만나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내향적 성향이 강한 인간의 슬기로운 사회생활, 언제쯤 가능해질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