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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Nov 19. 2022

좋은 효과를 위한 처방전

딱 하나만 바꾸기

좋은 효과를 위한 처방전, 딱 ‘하나’ 바꾸기.  





로션 용기를 뒤집어 캡을 닫은 채로 손바닥에 탁탁 내리친 후 튜브를 쭉 눌렀을 때 ‘피융 퓽’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면 다음에 만들 로션의 레시피를 짜야한다. 그럼 매번 다른 로션을 만드는 건가요?라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 기성품으로 예를 들자면 1월에는 A사 로션을, 3월에는 B사 로션을 쓰는 셈이죠.’     


아이와 어른이 사용하는 로션이 다르다 보니 두 달 간격으로 서너 개의 새로운 천연재료구성이 필요하고 추운 겨울이 찾아와 로션을 사용하는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지면 새 로션의 탄생 주기는 3주 간격으로 좁혀진다. 하지만 정작 사용하는 사람에게 로션은 그냥 로션일 뿐, 매번 다른 로션을 바른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기에. 추위에 갈라진 피부 위로 더욱 거세게 로션을 쥐어짜는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수분기 하나 없는 애꿎은 찬바람을 탓하곤 한다. 






하루에 물을 2L 이상 먹어야 해요. 3 L면 더 좋고.


비염으로 코가 꽉 막혀 불편을 호소하는 아이에게 내려진 의사의 처방이었다. 이비인후과가 아님에도 호흡기 질환 진료로 꽤 유명세를 얻어 줄을 서야 하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고작 ‘물 마시기’라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다. 이 병원을 나서는 순간 아이가 힘들어하던 증상들이 눈 녹듯 사그라들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밤마다 코가 막혀 잠을 깊게 자지 못했고, 어떤 음식도 맛있게 먹지 못했다. 이 증상이 매 년 반복되자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에 ‘만성’이라는 말이 따라왔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비염 증상이 지속적으로 발병할 경우에는 한 알의 약보다 안 좋은 생활습관을 개선해서 증상을 예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아이가 바꿔야 할 딱 한 가지의 습관 처방이 내려졌다. 


‘ 안 마시던, 물 마시기’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 채워가는 300ml의 물도 다 마시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에게 하루 2L의 물이라니.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1.7L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하는 의사의 처방전에는 엄마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딱 한 가지만 바꾸면 아이의 고통이 사라진다는 처방은 꼭 해야 된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동시에 그간 아이에게 이 작은 습관도 만들어주지 못한 엄마로서의 부족한 면을 마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 한 가지의 안 좋은 습관을 바꾸기 위해 매시간을 쪼개 미션을 수행했다. 2주에 한 번씩 아이의 증상이 호전되고 있음을 확인받으며.  






새로운 화장품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이전에 사용했던 천연재료의 구성을 체크해 새로운 레시피를 짜는 것이다. 아무리 나에게 잘 맞는 좋은 재료일지라도 6개월 이상 같은 재료를 같은 비율로 사용하면 피부에 재료에 대한 내성이 생겨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용하는 재료구성 방법은 이전에 사용했던 재료 중 한 가지를 바꾸는 것이다. 이전 로션의 효과가 만족스러울수록 이 과정은 신중해진다. 무거운 오일은 무거운 오일끼리, 가벼운 오일은 가벼운 오일끼리. 고보습 오일은 고보습 오일끼리, 기능성 오일은 기능성 오일끼리. 서로 비슷한 효과를 가진 오일끼리 서로 교차하여 구성한다. 사용하는 재료의 비율을 달리하는 방법도 있다. 호호바 오일과 바오밥 오일이 들어가는 로션의 효과가 좋았다면, 1월에 만든 로션에는 호호바 오일을 더 많이 넣고 2월에 만드는 로션에는 바오밥 오일을 더 많이 넣는 레시피를 짜는 것이다. 이리하면 사용되는 오일은 같지만 주 오일이 달라져 새로운 로션이 탄생된다. 



좋은 효과를 내기 위해 더하기가 아닌 '바꾸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자, 나를 절망케 했던 의사의 처방전이 떠올랐다.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만성’이란 단어의 한자어에는 ‘게으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쩌면 그날 아이에게 내려진 처방은 ‘게으름’에 대한 처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바르는 로션처럼, 찬바람을 탓하면서도 좋은 효과를 내기 위한 로션 재료를 매 번 다시 구성하는 것처럼. 


모든 일을 로션 바르는 것만큼만 꾸준히 한다면 어땠을까.  


모든 일을
로션 바르는 것처럼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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