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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Feb 05. 2020

검찰청사에도 꽃은 피어난다

목련, 나무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고요하지만, 덜 여문 백색이 처연하다

벌써 입춘입니다.  


검찰청사 현관 앞에는 해마다 봄이면 흰색 목련이 핍니다. 남향인 청사건물의 당직실 바로 앞에, 적당히 가지를 벌려 서 있습니다. 볕을 좋아하는 식물인지라 탁 트인 남향의 볕을 듬뿍 받고 봉오리는 북녘을 향하여 피어납니다. 꽃잎은 백색이지만 들추어보면 속살에 연한 홍색이 향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고요하지만 덜 여문 백색이 처연합니다.


미련스럽게 북쪽을 향하는 꽃봉오리가 무언가를 갈구 하듯 안타깝습니다. 북쪽의 바다 신을 향한 공주의 사랑(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한 공주가 죽어 하얀 목련이 되었다는 전설)이 등불 안에 잠기지만 그보다 먼저 자리한 담홍빛이 북쪽 바다 신 아내의 비애를 슬퍼하는 듯합니다. 아주 가끔은 민원인들의 휴대폰 카메라가 목련을 향하기도 하지만 정말 아주 가끔 일 뿐입니다. 검찰청에 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기자들 말고는 거의 드뭅니다.      


목련 옆에 자리한 산수유 한 그루도 뒤이어 피어납니다. 산수유는 여럿이 모여야 그 색이 역할을 하는데 달랑 한그루라 노랑이 너무 옅습니다. 피었구나 하고 돌아서면 어느 날 스러지고 없습니다. 김훈 선생의 묘사처럼 노을이 스러지듯 종적을 감춥니다. 늦가을 추위가 찾아와서야 붉은 열매로 다시 나타나 내가 산수유요 합니다.       

청사 뒤편 온정관(직원 관사) 가는 길에는 벚꽃이 여러 그루입니다. 꽃이 만개하면 하동 쌍계사 가는 길 벚꽃에 못지않지요. 손톱만한 꽃잎들이 송이를 이룹니다. 여러 송이 무리지은 꽃가지가 화려하고 탐스럽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그 아래 직원들이 커피를 들고 모입니다. 꽃잎이 바람에라도 날리면 “꽃이 져부네!”하고 아깝다고 아쉬워합니다.     


꽃잎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떨어지는 그 슬픔 어이 견디리.    


시인 두보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잡힐 리 없는 꽃잎이지만 떨어지는 꽃비에 괜히 손을 내밀어 봅니다. 바닥에 쌓인 꽃잎들은 매몰차게 밟기가 미안합니다. 식당가는 길에도 일부러 피해 꼿발을 디디며 갑니다.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매해 겪어도 아쉽습니다. 어릴 적엔 버찌를 따먹기도 했는데 요즘 애들은 먹는지도 모를 겁니다. 청사 벚꽃이 아쉬운 2월 전입 검사들은 퇴근 후 몇이 모여 쌍계사로 향하기도 합니다. 쌍계사 벚꽃은 밤이면 조명의 도움을 받아 낮보다 더 화려하게 변합니다. 제철 맞은 벚굴 하나에 소주한잔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알딸딸한 기분에 저마다 두보가 됩니다.

     

테니스장 아래로 가면 살구꽃도 핍니다. ‘아가씨의 수줍음’이라는 살구꽃의 꽃말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발그레한 수줍음 자태가 맑은 홍색으로 곱습니다. 살구 열매도 제법 주렁주렁 열립니다. 청의 살구 계장(살구 따는 걸 좋아하는 수사관이 한 분 있습니다)이 수고를 감수하면 직원들이 하나씩 살구 맛을 보기도 하지요.     


매점 앞 잔디밭엔 송엽국도 지천입니다. 번식력이 좋아 해마다 자리를 넓히고 있습니다. 줄기를 조금 끊어 한쪽에 꽂아두면 며칠이면 자리를 잡습니다. 솔잎처럼 생긴 국화라는데 송엽보다는 채송화를 닮았습니다. 송엽국 근처에는 노란 고들빼기도 무성합니다. 민들레인지 고들빼기인지 구별이 힘듭니다. 순천 별량면의 특산품이기도 한 고들빼기는 김치를 담가놓으면 쌉싸름한 맛이 일품입니다.     


시간을 내어 청사주변을 돌아보면 이것저것 꽃들이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검찰청에도 꽃들은 수수하게도, 화려하게도, 수줍게도 피어납니다. 우리 청 시인이 노래한 개불알꽃도 어딘가 있을 텐데요.     


연보랏빛 큰개불알 꽃 오밀조밀 피어나서는 
뒤꿈치 살짝 들고 
하늘과 키를 견주는 봄봄 <시인 강병철, 산사의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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