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해외생활을 뒤로하고 코로나 펜데믹으로 델리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들어오던 그날.
내가 이곳 시골 산자락 아래 북카페를 열게 되리라고 참깨만큼이라도, 티끌만큼이라도 생각을 했을까? 오자마자 머물던 수원 도시에서 6개월의 시간에도 티끌만큼도 몰랐다. 그렇게 여전히 사람의 앞길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언가 새롭고 좋은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씨앗처럼 작은 희망을 안고 이곳에 들어온 지 어느덧 3년 반이 되었다. 산으로 산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것만 같던 이 길을 용기를 내어 내디뎠던 그날. 두려움을 이겨보기 위해 나름 기도하며 커다란 용기를 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누군가를 만나며, 어디를 향해 갈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친환경적인 숲 속 작은 학교, 장평초등학교를 찾아오게 된 우리의 도전이 지금 이곳 북카페까지 오게 되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전혀 꿈꾸지 못했던 일이 진행되기 시작된 것이다.
다시 인도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며, 갈등과 번민에 쌓여있던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왔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준 스리랑카 친구 샨트 씨와의 만남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북카페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냈던 그 시간과 경험이,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외국인들이 편하게 왕래하며 쉴 수 있는 곳. 타국에서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잊게 할 고향 같은 편안하고 포근한 곳.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북카페는 오래전 나의 젊은 날부터 꿈꾸던 곳이었다. 결국 우리가 인도에서 열고 싶었던 북카페를 이곳 우리 고국땅, 그것도 시골 마을 구봉산 산자락 아래에 자리하게 되다니, 우리의 인생이 이렇듯 신묘막측하기만 하다.
그동안 낑낑대며 배를 타고 영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인도로, 다시 인도에서 한국으로 길고 긴 여행을 하던 우리가 간직하던 책을 꺼내어 북카페 책꽂이에 꽂아 놓던 그 순간은 얼마나 가슴 벅찼던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턱이 닿도록 드나드는 곳이 되기를 꿈을 꾸었다. 함께 모여서 양서의 도서를 읽으며 독서모임을 하고, 작가님들을 모시고 북토크를 하고, 목소리를 모아 책 읽는 낭송 모임도, 책을 읽어주는 책수업도 하고 싶었다. 정원은 타샤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듯한 온갖 꽃들로 가득한 곳으로 가꾸며, 강아지들이 유유히 자유롭게 뒹굴며 뛰어노는 곳이 되기를 꿈꾸었다.
초록잔디와 장미 울타리가 담을 넘어 꽃웃음을 날리는 정원이 예쁜 북카페, 뒤에는 살구나무가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앞쪽에는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는 곳, 그리고 텃밭에서 상추와 토마토, 오이, 바질과 루꼴라를 따서 신선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곳을 꿈꾸며 그리 준비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았다. 이제 북카페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1년이 지나고 반년이 훌쩍 지났다. 정원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여 풍성하게 채워졌고, 초록색 어닝은 눈부신 햇볕을 가려주고, 비가 올 땐 빗물을 막아주었다.
이제 우리 북카페 꿈꾸는 정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소한 일상과 특별하기도 평범하기도 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생수의 강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처럼, 마음을 풍요하게 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