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되나요?"
"아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개시할게요."
"여기 팥빙수가 달지 않고 맛있어서 먹으러 왔어요."
"감사해요. 꼭 다시 오세요. 맛있게 해 드릴게요."
우리 북카페의 단골 부부는 작년 여름에 내가 만든 팥빙수가 맛있다며 좋아라 하셨다. 올해 다시 여름이 오기가 무섭게 팥빙수를 찾으셨다. 나는 미처 여름철 빙수 재료를 다 준비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더워지기를 기다리며 미루고 있었던 터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오셔서 다시 두 번째로 팥빙수를 찾으셨을 때는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메뉴를 정갈하게 준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다시 또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나는 매번 주말에 오셨던 내외분께 여쭈어봤다.
"주중에는 바쁘세요? 혹시 시간 되시면 평일에 오세요. 꼭 맛있게 만들어드릴게요."
"시간 많아요. 안 바빠요. 백수예요."
죄송한 마음에 약속을 드리는 내게 바깥 남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언제든 오시면 다음에는 꼭 옛날식 팥빙수를 맛있게 만들어드리기로 했다.
카페라테와 자몽차를 마시고는 정원을 거니시던 아내분이 내게 물어오셨다.
"채송화가 안 보이네요."
"네, 작년에 심었는데 올해는 안 올라왔어요."
"우리 집에 채송화가 엄청 많은데 좀 갖다 드릴까요?"
"그럼요, 저야 너무 감사하죠."
사실 나는 채송화를 좋아한다. 심지어 사춘기 시절에는 미래의 자녀에게 '채송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채 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채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나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북카페 정원을 가꾸며 온갖 예쁜 꽃들을 계절에 맞추고, 꽃 색깔을 염두에 두며 바쁘게 보냈다. 꽃 이름을 알아가며 배우는 것도 큰 기쁨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채송화도 사서 화단에 심었다. 대부분 작년에 심었던 월동하는 꽃들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마치 헤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친구를 만나는 큰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때론 감사하는 마음에 울컥하며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채송화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리운 님처럼 야속한 마음도 들었던 터였다. 그런데 내게 정원 화단의 그 많은 꽃들 속에 채송화가 없다고 알아채셨다. 채송화가 없는 빈자리를 채울 따뜻한 선물이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가슴이 뭉클했다.
그 후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찾아오신 내외분의 손에 채송화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정원에서 직접 캐 오셨다고 하셨다. 우리 북카페 꿈꾸는 정원을 함께 가꿔가시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동행하며 손잡아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채송화가 색이 여러 가지예요."
"감사해요. 제가 예쁘게 키울게요."
화단의 빈 공간에 구석구석 채송화를 옮겨 심었다.
내리는 빗물 머금고 튼튼하게 잘 자랄 거라 기대하며, 어서 한여름에 울긋불긋 채송화가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린다.
수채화 같은 모습의 중년 부부.
은퇴하시고 조용히 전원주택에서 삶을 누리고 계시는 것으로 보이는 두 부부의 모습은 참 다정하다. 나이 들어도 저리 다정하게 함께 다니시며, 커피를 마시고, 계절을 남들보다 더 일찍 맞으며 입에 맞는 팥빙수를 찾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입꼬리가 올라가게 한다.
언제나 작고 둥근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드시며 책을 보신다. 두 분이 각자의 책을 들고 앉아 한참 동안을 머물다 가시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을 때가 있을 지경이었다.
돌아가시는 길을 배웅하러 따라나갔다.
"팥빙수 어떠셨어요? 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뭘 그렇게 많이 넣어주셨어요. 맛있었어요."
"맛있으라고 많이 넣어서 만들어드렸거든요."
타고 오신 컬러풀하고 센스 넘치는 자동차를 보며 내 마음에 환한 꽃 한 송이가 하나 더 피어났다. 완벽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조차도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다시 오실 그분들을 위해 더 맛난 팥빙수 재료를 준비해 두련다. 내게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 같은 손님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