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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 Sep 16. 2022

우리는 모두 거대한 유리판

Personal Ego의 충돌


은사님을 만나기 위해 자카르타 모교(자카르타 국제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잘 됐네"
"근데 그 친구들이랑 있으면 제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게 돼요. 또 대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바뀌면 가끔 어느 쪽이 진짜 저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There's a word for that. It's called Cultural Schizophrenia."
"너는 네 상황에 맞게 잘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너는 네가 사람들마다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고 네가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네가 지금 나한테 대하듯이 그 친구들을 대했다면 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을까? 네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대하듯이 여기 사람들을 대했으면 너는 여기서 행복했을까? 그게 맞는 행동이었을까?"


내가 심리 책들을 읽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느낀걸 남들도 느끼고 있고 그런 것들을 칭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는 안정감이 좋기 때문이다. 그것을 칭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컨트롤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Cultural Schizophrenia는 여러 문화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생기는 혼란스러움을 칭하는 단어이다. Non-TCK에게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예는 부모님이나 파트너가 보는 앞에서 직장 줌 미팅을 참석해야 할 때 오는 어색함이다.




코로나 락다운 시절, 신문사 줌 회의를 부모님이 있는 거실에서 했을 때였다.


신문사에서의 내 모습과 부모님이 아는 자식 #2인 나의 모습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디폴트 표정, 몸 언어, 그리고 쓰는 어휘도 달라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염탐하는 듯하기도 해서 괜히 평가받는 느낌도 든다. 내가 미팅에서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그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쉽게 관찰의 대상이 된다.


또 다른 예로 과거 보그 유튜브에 올라온 티파니 영(Tiffany Young) 해외 활동 영상의 한국어 번역본 vs. 한국 관객(audience)들이 있다. 영상에서 티파니가 미국에서 매우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한국에서 소녀시대 멤버로서 보여준 수줍어하는 모습이랑은 너무 다르다, 아예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연기였냐'라고 말하는 여론이 한 때 형성된 적이 있었다.(현재 그 영상은 삭제되었다)


여기서 질문은 '일을 하는 나'가 진짜인가, '부모님이 아는 나'가 진짜인가, 티파니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티파니'가 진짜인가, '한국에서의 티파니'가 진짜 티파니의 모습인가, 그리고 많은 TCK들에게는 'A 문화권에서의 내 모습'이 진짜 나인가, 'B, C 문화권에서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건 거대한 유리판이 부서지고 모든 파편들이 '내가 진짜 나야!'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자 다른 파편들이 서로 "내가 진짜고 너는 가짜야"하는 게 얼마나 웃긴 광경인가.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스펙을 키우는 것과 같이 일차원적인 이유와는 별개로 내 안에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는 아주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지식이 넓혀졌다는 것은 내가 인지하고 있는 무지의 영역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 배우기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한번 이 강을 건너면 아무리 그 전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애원을 해도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본인이 TCK이거나 자녀가 TCK인 부모 거나 TCK에 관심이 있는 독자일 거라고 예상해본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끝으로 immune neglect에 대한 설명으로 글을 마치겠다.


Immune Neglect: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본인 능력을 과소평가하려는 인간의 경향.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PIeovJJgC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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