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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 Apr 05. 2024

한국 사회에서 빠른 년생으로 산다는 것

나는 빠른 00년생이다. 간혹 이렇게 말하면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마디로 친구들은 99년생이지만 나는 00년생으로 학교에 1년 일찍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까지 문제가 없던 내 나이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굉장히 큰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생각보다 굉장히 큰 문제였다.


"서연씨, 서연씨 엄마 자궁에서 언제 나왔어? 00년에 나왔잖아, 왜 99년생인척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돈을 버는 모든 행위는 하나하나가 고역이다)
"일 년 세이브해서 좋겠네"
"빠른년생들은 본인 이익에 맞게 나이를 바꾸더라"
"족보 브레이커"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 후, 나는 내 친구들이 다 99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갑자기 00년생으로 살아가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애초에 99년생과 00년생 사이에서 고민조차 안 했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는,

"하이고 그렇게 언니 소리 듣고 싶냐?"


그래서 한 살을 줄이려고 하자 들려오는 소리는,

"하이고오~ 그렇게 한 살이라도 어려지고 싶냐?"


이 외에도 들은 꽤나 거친 표현들이 많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남의 나이에 본인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수준 낮은 단어들까지 섞어가면서 감정 소모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었다.


한마디로 나의 상황은 이렇게 해도 욕을 먹고 저렇게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몇 번의 해프닝 이후 오랜 기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빠른 년생이 어떤 나이를 선택하든 주변에서는 그 선택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고 그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주변에 99인 지인들이 이미 너무 많아 내가 갑자기 00으로 살기 시작했다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고등학교-대학교가 같은 사람들만 수두룩한데 대학교에서 00으로 살았다면 새로 만난 사람들과 이미 나를 아는 지인들이 겹쳐 어색해질 일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만난 A라는 사람한테는 '아 나 빠른인데 그냥 언니라고 안 불러도 돼~반말 해~'하면서 고등학교 후배인 B한테는 또 언니라고 부르기를 강요할 것인 거란 말인가? 아니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고등학교 후배 B보고 이제부터는 나한테 반말해라고 말을 할 것인가? A와 B는 만약 이 일관되지 않은 상황을 알게 되면 어떤 의문점들을 가지게 될까?


반대로 "나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하면서 본인이 굉장히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방이 어떤 나이를 선택하던지 간에 본인 편한 대로 상대방 나이를 정해버린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나의 나이를 타인이 정해버리면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족보가 꼬이는 일이 생겨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조직에 빠른년생이 들어가서 자신은 빠른 년생/한살 내린 나이로 살기로 하고 호칭도 그렇게 정했는데 한 사람만


"아~저는 쿨해서 나이 한 살 두 살 그런 거 신경 안 써요~저는 00씨 동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게요! ㅎㅎ"

혹은,

"아~저는 아무리 그래도 좀 불편해서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요 ㅎㅎ"

라고 말을 하는 순간 족보가 꼬이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 다른 가정 상황이 생길 수 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나이에 태클을 많이 걸었는지 나도 정말 많은 별의별 '만약에' 상황을 들어보았다.)


사무실에서 A씨는 빠른 년생이지만 한 살 어린 나이로 살아왔다. 근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B씨는 빠른 년생이지만 한살 많은 나이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근데 B씨는 A씨보다 생일이 느리다. 그래서 사실상 A씨는 B씨보다 더 일찍 태어났지만 사무실에서의 나이는 한살 더 어린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빠른 년생 당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개입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때 가서, 정말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생각해도 늦지 않은, 인생에 있어서 빠른 년생들에 게도 중요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타인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빠른 년생이 아닌데 정말 이런 문제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 일에 감정소모를 하고 있는 경우를 보았는데 나는 주로 이런 사람들과는 결이 잘 안 맞았었다.


이것은 굉장히 시시한 문제인데 그 이유는 우선 이 둘 중 누구 하나도 불법적인 행위를 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빠른 년생이 된 것은 애초에 대부분의 경우 정부에서 학교에 빨리 가라는 입학통지서가 온 굉장히 '합법적'인 경우이고 미취학 아동이 '후후후...나는 빠른년생으로 가서 인생에서 1년을 세이브 할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자의로 입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나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나이는 군 계급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반이 군대라는 조직에 몸을 담갔으니 사회 전체가 군대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조직이든 꼭 막내가 있어야 하고 깍듯이 모시는 문화는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특히 사회생활 전인 고등학교, 대학교 때만 해도 1년 선배는 매우 큰 차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더욱 빠른년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고통을 받는 것 같다.


한 번은 어떻게 알게 된 나이차이가 꽤 나는 학교 선배님과 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리고 받은 조언은 굉장히 큰 위안이 되었다. 본인도 주변 빠른년생 지인들이 이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종종 봐왔는데 빠른년생의 좋은 점은 처음에 빨리 빠른년생이라고 말해버리고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이 그 사람을 거르는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지나치게 큰 관심을 보이고 처음 본 타인의 '나이'에 의해 순간의 감정이 결정되는 사람 중에서는 가까이해서 좋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도 빠른 년생을 욕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 당시에만 힘들었지 그 이후로는 서서히 그 사람들과 멀어졌다.


빠른년생으로 고민이 많을 시기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인터넷에서 빠른년생에 대해서 검색도 많이 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읽어보았었다. 누군가는 빠른년생 때문에 고민이 되어서, 혹은 괜히 주변 빠른년생이 신경 쓰여서,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 글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특히 사회에 나오면 더더욱 중요해지지 않는 것 같다. 학교처럼 학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또 늦게 학교를 보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참 웃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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