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태양은 모든 것을 익히고 태우려는 것처럼 뜨겁게 내리꽂고 있었다.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에어컨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한낮의 열기는 사람들의 마음속 인내심까지 증발시켜 버렸다. 도로 위 차들은 조금만 지체되거나 갈팡질팡하면 여지없이 경적을 울렸다. 100dB가 넘는 날카롭고 선명한 소리가 귓바퀴를 따라 달팽이관을 울렸다. 척수를 통해 올라온 소리 정보가 시상을 거쳐 대뇌피질의 모든 감각기관에 전달되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앞에 차가 안 가서 나도 이러고 있는데’
아몬드보다 작은 변연계의 편도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을 전두엽을 통해 인식했다. 끓어오르는 화에 대해서는 눈썹 사이에 위치한 전전두엽이 개입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사고 없이 조심히 들어가자.’
크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카페인 때문에 빠르게 요동치는 심박이 조금 내려갔다. 보복심리로 경적을 누르려던 손이 멈췄다. 테트라포드를 잡아먹을 것처럼 부딪치던 마음속 파도가 잔잔해졌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다시 시작할 때. 저 멀리 경찰관과 실랑이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위반 딱지를 달게 받으면 될 텐데,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교통경찰과 실랑이했다. 답답했는지 점점 커지는 몸짓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 순간 처음 운전하며 불법유턴 딱지를 끊겼던 그때가 떠올랐다.
“융통성 참 없다. 아버지가 장애인이라서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이라도 하지 쯧쯧.”
나에게는 96년식 수동 구형아반떼가 있었다. 아버지가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갈 때만 사용하는 자동차. 양쪽 뒷 휀더는 녹이 슬어 과자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에어백 하나 없이 안전벨트가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선팅도 없어서 내리쬐는 태양 빛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당장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은 자동차. 지금 내 상황과 일맥상통했다. 필요 없고 버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과속, 불법주정차등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는데 3년 만에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아…”
그는 며칠 전부터 약이 떨어진다고 내게 닦달했다. 아르바이트 일정 변경이 쉽지 않았지만 오전을 쉬기 위해서 전날 마감일을 했다. 이후 4시간도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부터 생각했다.
‘빨리 집에 와서 쉬고 싶다.’
병원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봤다. 두 달 치 빵빵한 약 봉투를 받아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이벤트로 받은 주유권으로 기름을 가득 넣었다. 액셀레이터에서 브레이크 페달로 옮기려고 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이 모든 상황이 나를 안일하게 만들었다. 2m만 더 가면 유턴할 수 있게 중앙선이 끊어져 있었다. 자주 다니는 길 더불어 맞은편에선 차가 오지 않았다.
‘별일 없을 거야. 오늘은 운이 좋으니까’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잡아 돌린 순간이었다.
“삑- 삑--”
천둥처럼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 눈 안으로 검은 선글라스를 낀 경찰을 마주했다. 비상등을 켜고 가장자리 차선으로 자동차를 멈췄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왼손 때문에 창문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불법유턴을 하셨습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셨기 때문에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제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막무가내로 죄송하다며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어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었고 핑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5분만 뒤로 되돌리고 싶었다..
"제발 유턴하지 마 조금만 더 가서 돌려. 너 20시간 일해야 하는 돈을 단 1분 만에 날린단 말이야. 이번 달 생활비 어떻게 할 거야?"
눈앞에 안개가 끼었고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목이 메왔다. 가방을 더듬어 면허증을 꺼내 건네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송해요. 그런데 벌 점만 없는 거로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 정말 죄송합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두 손을 싹싹 빌어서라도 벌점을 피하라는 조언. 경찰관은 다시 기기를 조작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운전석 창문을 통해 신분증과 과태료 납부 영수증을 건넸다. 내가 경찰관과 대화하는 동안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메두사의 저주로 석상이 된 것처럼. 손으로 약봉지만 부스럭부스럭 만지고 있었다.
“뻔히 국에서 머리칼 나오는 거 보고도 가만히 있어?”
“죄송해요. 집에서는 그냥 빼고 먹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어요.”
“뚫린 게 입이라고 나오는 게 다 말이지?”
예전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타인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나에게는 큰소리를 쳤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국에서 머리칼이 나왔다. 집에서는 그냥 빼고 먹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벌레가 나왔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겨우 이런 거로 직원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네가 나를 무시했다고. 음식에서 머리칼이 나왔는데 뭐 하는 짓이냐며 소리칠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중한 것이면 스스로 하지 왜 나에게 떠넘기는 걸까? 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에게 화풀이하는 걸까?'
일주일에 한 번 국과 반찬을 만들었다. 저번 주에 먹은 것과 아버지 취향 계절, 등의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했다. 아버지께 드시고 싶은 국과 반찬을 여쭈었다. 그런데 그는 무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매번 똑같은 거 하면서 앞으로 이런 거 묻지 마라”
“네. 그렇게 할게요.”
이후 아무 말도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준비했다. 그러자 또다시 화를 냈다.
“왜 묻지도 않고 반찬과 국을 끓여? 지금 나 무시하니?”
“그때 그냥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장애인이라고 기억 못 할 줄 알아?”
아버지는 목과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역정을 냈다. 그와 말싸움할 기운이 없어서 이번에도 사과했다. 그는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일만 간직하고 행동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걸까? 그 이후로 의미 없는 질문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 주에 반찬이나 국 뭐 할까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신가요?”
아버지는 타인에게는 불평불만을 꺼내지도 못하면서, 나에게는 목소리를 키우고 큰 몸짓으로 역정을 냈다. 아마도 스트레스 회피 방법의 하나였을 것이다. 모든 자극을 외면하고 기억하지 않는 것. 나의 일이지만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기억의 단절과 해리를 통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 이것이 부적인 강화를 주어 나쁜 방어기제 습관이 되었겠지. 노화와 더불어 양극성정동장애 약의 섭취가 뇌 기능 저하를 가져왔을 것이다. 감정을 생산하는 변연계 편도체가 민감해지고, 이것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되었겠지. 아버지의 감정이 없어지자 인성도 사라졌다. 평소에는 무표정으로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가끔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폭발적인 화를 낸 것. 이것이 그의 교체되는 인격이지 않았을까? 본인 스스로 성을 낸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의식적인 해리성 기억상실을 보인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기억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은 척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일어난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