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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Sep 21. 2024

흑백요리사 후기

잘 짜인 구조 속 서사가 풍부한 주인공들

앉은자리에서 4화를 내리보고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어 글을 쓴다.


한 분야에서 끝을 본 사람은 다르다.


그가 스스로 갈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본 사람인지는 그의 삶에 녹아 드러난다. 그가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야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알려진 고수이든 재야의 고수이든 끝까지 가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드러난다.


급식의 대가가 선보인 정직한 한판의 급식,

한식의 장인이 선보인 깊이 있는 곰탕 한 그릇,

묵은지라는 낯선 식재료를 마주한 미국 출신 셰프가 선보인 생경한 샐러드 한 접시,

다채로운 요리의 향연 속 젊은 셰프가 선보인 기본기에 자신의 색을 더한 알리오 올리오,

조림의 대명사가 선보인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무조림까지


고수의 음식에는 삶의 철학이 녹아 있고 어떤 어려운 난관을 마주해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대단한 것은 이 간결한 메시지를 프로그램 속 다양한 장치로 녹여낸다는 것이다.


80명 흑수저의 대결에서 설사 60명 떨어지더라도 80명의 흑수저 요리사 각각의 스토리를 다룬다. 마치 성장 만화에서 캐릭터 하나하나에 서사를 부여하는 밑작업과 유사하다. 게다가 비슷한 서사끼리는 함께 편집하여 이 중 누가 생존할지 쪼는 맛이 어마어마하다.


흑과 백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흑이 직접 대결대상을 고르게 하여 그들의 패기와 함께 백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한식 중식 일식 양식으로 구분되는 분야의 매칭이 아주 자연스럽게 완료된다.


흑과 백의 일대일대결에서는 맛 본연에 집중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눈을 가린다. 2:0으로 귀결되는 심사 결과를 보며 맛이라는 얼마나 원초적이고 정직한지 깨닫게 됨은 물론, 미사여구처럼 느껴지던 맛의 깊이가 실존함을 목격한다. 더 백미는 1:1로 갈리는 순간이다. 맛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때 그 차이가 얼마나 미묘하며 또 견고한지도 보여준다.


심사위원 선정도 탁월하다. 흑과 백의 상징성을 가진 두 고수가 서로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되, 겸손하고 유쾌하다. 특히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은 근 몇 년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심사위원 중 압도적으로 좋았다.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고 그걸 납득시키는 심사였다.


이 모든 장치들을 통해 결국 흑과 백이라는 계급이 누군가를 구분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를 더욱 빛내는 하나의 수식어처럼 느껴지게 한다.


잘 짜인 구조 속 서사가 풍부한 주인공들이라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하 다음 주는 합동대결이라니 이 얼마나 스펙터클한 서사인가. 제발 끝까지 이 기조가 유지되는 역대급 프로그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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