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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Feb 19. 2022

영희씨에 대하여

영영 무지한 것들은

할머니는 가슴이 콱 막혀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매일 깍두기와 밥만 먹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달이 흘렀더라.

교문동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날카로운 주먹에 맞은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 머리에 난 멍은 점점 커지더니 얼굴까지 내려왔다. 큰아버지는 교문동으로 달려와 할머니에게 인제 그만 이혼을 하시라 했다. 할머니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 더 흘렀다.

할머니는 앞도 안 보고, 뒤도 안 보고, 아래만 보고 살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자주 가던 국밥집에 다시 간 적이 있다. 국밥집 주인아줌마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누이’인줄 알았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할머니가 하도 가만히만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도 아래를 보고 계셨을 테다.

우리 할머니 영희의 키는 140이다. 시중에 파는 옷들은 대부분 몸에 맞지 않아 맞춤 옷만 입는다. 할머니의 생일마다 두 아들은 맞춤 옷을 선물로 드린다. 아기자기한 꽃무늬의 투피스 치마가 대부분이다. 할머니만이 소화할 수 있는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옷을 위, 아래로 맞춰 입고 할머니는 여성회관에 가서 한자를 외우고, 쓴다. 그리고 수영장 트랙을 몇 바퀴 돌고, 여유롭게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는 교문동의 건물주다. 그녀는 건물의 가장 낡고, 작고, 추운 방에서 지낸다. 며칠 전에는 윗집 사는 총각 월세를 깎아줘서 아버지에게 혼났다. 

큰 집과 우리 집은 할머니 재산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인다. 어머니는 나에게 할머니가 ‘큰 집 딸 집 장만에 오천을 보태줬다’는 궁금하지 않은 정보를 말해준다. 나에게 할머니의 돈을 어떻게든 가져와야 한다는 투로. 시시때때로 긴장하고, 할머니 돈을 큰 집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투로. 그건 누구 돈이지. 

“네 할아버지 카리스마도 못 보고 살아서…”

할머니는 말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사랑할 수 없어서, 그게 아쉬워서 요즘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춤을 추러 다녔다. 할머니는 매일 한자 공부를 하고, 수영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을 지켰다. 술에 취해 돌어 온 할아버지 눈을 피하기 바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바지를 벗겨드렸다. 주먹이 날아오지 않을까, 욕설이 들려오지 않을까. 조용조용, 살금살금. 아래만 보고 살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산 게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집 아래층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나는 종종 의무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밥을 먹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빨가벗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걸 봤다. 할머니는 내가 온 걸 확인하고 할아버지 성기를 수건으로 가렸는데 할아버지는 수건을 치워 버렸다. 나는 할아버지 성기 옆에 난 털을 힐끔거렸다. 우리는 둘러앉아 오므라이스를 함께 먹었다. 양파만 잔뜩 들어간 오므라이스는 할아버지가 만드셨을 테다. 김치에서는 젓갈 냄새가 역하게 났다. 케찹도 없었다. 나는 숨을 참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과 양파를 볶고, 그 위에 계란을 올린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얼마나 없었겠느냐만은 나는 그걸 먹으면서 이상하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삼 년간 할아버지 병간호를 했다. 매주 거동 못 하는 할아버지와 한 시간 거리 병원에 투석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만 계셨다.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네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빨리 죽으면 차라리 좋겠다고 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나는 할머니가 우는 걸 단 한 순간도 본 적 없다. 할머니는 모든 게 잘 된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날부터 한자리에 앉아 벌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생각들 때문에 한자 공부를 못하셨다. 수영도 못 가고, 밥은 깍두기 반찬이랑만 드셨다. 할머니는 스스로 내린 벌을 받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는 할머니가 다시 한자 공부를 시작하셨다. 

할머니, 그건 카리스마가 아니라 폭력이에요. 하루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걸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고. 나는 할머니가 메고 온 작은 가방과 그 가방 안에 든 한자 노트를 보며, 꾹꾹 눌러쓴 할머니의 한자 글씨를 보며, 그것들을 주섬주섬 챙겨 다시 생각의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것에는 영영 무지할 수 밖에 없다고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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