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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Mar 02. 2022

못나고 귀여운 지독이들아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새로운 이름을 짓고,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사람처럼 굴고, 낯선 도시에서 종종 버려진 기분을 감내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에게는 멋지게 사는 모습을 성실히 전시하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 그래서 반년 동안 공인어학 성적 취득에 매달렸다. 하지만 영어 앞에서 치솟는 선택적 의지박약과 함께 자격 미달의 토플 성적을 취득하고 말았다. 다음 시험, 그다음 시험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휴학하고, 교환학생 준비를 위해 몰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쉽게 교환학생의 기회를 놓아 버렸다.


  나는 끝내 쟁취하지 못한 것 앞에 지독하다. 교환학생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 곧 교환학생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휙 고개를 돌리고,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지독하게 부러웠기 때문이다. 쓴 양주를 삼킨 것처럼 목울대를 타고 독하게 흐르는 질투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참 못났다.


  그래도 “이게 똥 냄새만큼이나 지독해?”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망설이겠다.

  “똥냄새가 너무 지독하다”는 말과 “나는 참 지독한 사람”이라는 말 사이에는 셀 수 없는 간극이 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각각 지독한 면이 있다. 그들의 지독한 면면은 못났지만 귀엽다. 한 꺼풀 벗겨낸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가 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할머니 둘남은 팬심 앞에 지독하다. ‘장구의 신’ 박서진의 열혈 팬이다. 팬클럽 운영진인 둘남은 박서진 공연 일정이 잡히면 버스를 대절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고속버스에 사람들을 싣고, 포항, 창녕, 대구, 먼 길을 떠난다.

  얼마 전 박서진은 유산균 광고를 찍었고, 둘남의 집 창고에는 유산균 세 박스가 쌓여 있다. 둘남은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우리 집에 각각 한 박스씩 박서진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유산균을 보내왔다. 그런 둘남을 보며 엄마는 말한다.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


  우리 엄마 수혜는 돈 앞에 지독하다. 수혜와 방콕 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난다. 수혜는 짜뚜짝 시장에서 원피스 가격을 깎기 시작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를 넓게 벌린 채 100밧은 더 깎아줄 수 있지 않으냐고 우겼다. 수혜는 결코 상글상글 웃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결국 500밧이었던 원피스는 300밧이 되었고, 수혜는 당당하게 짜뚜짝 시장을 걸어 나왔다. 수혜는 능청에 재능이 없어서 지독함을 무기로 내세웠는지 모르겠다.


  지독함이란 이토록 인간적이다.

  아홉 살 때였나, 나는 매주 한양대 병원 신경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기 직전 나는 빽빽 소리를 지르며 줄행랑쳤다. 커다란 병원 복도를 몇 바퀴나 달렸는지 모른다. 수혜는 화장실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내 기어코 진료대에 눕혔다. 나는 기절하기 직전까지 울다가 지쳐 잠들 때쯤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다음 주에도 나는 병원 복도를 달렸다. 어차피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독하게 울어댔다.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사람 앞에서,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고만 싶다. 어린 시절 주사를 다 맞은 나에게 수혜는 에잇, 지독한 녀석아, 하며 딱밤을 때렸을 텐데 요즘의 나에게 딱밤을 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나는 영영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냥 지독하게라도 굴어 본다. 부러운 것들아 잘 가라, 하며. 지독한 표정 한 번 지어준다. 꾸역꾸역 질투심을 처리하며 어떻게든 괜찮은 어른처럼 굴어본다.


  곧 봄인가보다. 날씨 한번 지독하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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