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살 Feb 23. 2022

내 사랑 짱구

세상 모든 짱구들이 짱구답기를 



  나는 짱구 같은 사람들이 좋다. 실은 짱구가 좋아서 세상의 모든 짱구들이 다 좋아져 버렸다. 짱구 같은 사람들은 잘살아야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단하니까. 짱구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지구 온도를 매일매일 조금씩 낮추고 있다.


  몰라찌이?


  짱구들을 말할 테다.



  짱구와 내가 처음 만난 건 '그 동아리' 방에서였다. 짱구는 대학 시절 '그 동아리' 활동을 했다. '너무 좌파 같은 그 동아리' 활동을 짱구는 그 어떤 자소서에도 기재하지 않는다. 짱구는 '그 동아리'에서 노동 운동을 하고, 퀴어 퍼레이드에 가고, 환경 운동을 하고, 온갖 인권 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쓰고 생각했다.

  짱구는 '그 동아리' 사람들과 술도 자주 마셨다.

  짱구는 남들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정답이라 믿었다.


  나는 스무 살이었고, '그 동아리'의 신입 회원으로 들어갔다. 동아리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나만을 위한 자기소개를 해줬다. 사람들은 짱구 대신 짱구 소개를 해줬다.

  "얘는 제주도 사람이야."

  짱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봤다. 그리고 계속 내 눈을 보며 물었다.

  "제주도 사투리 보여줄까?"

  "..."

  나는 짱구가 이상했다. 짱구 선배가 이상해서 자꾸만 눈을 피하고 싶었다.


  짱구는 회의 시간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기침하듯이 멋진 말을 뱉었다. 그리고 또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회의가 끝나면 신나게 술을 마시러 갔다. 술을 마시며 웃긴 얘기를 했다. 나는 짱구 선배가 점점 좋아져 버렸다.


  짱구 선배는 다음 학기에 '그 동아리'를 잠깐 쉬고, 제주도에 간다고 했다. 짱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짱구가 왜 동아리를 쉬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짱구 손을 꼬옥 붙잡고 짱구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선배! 내가 제주도에 갈 거야!"

  짱구에게 할 말은 그뿐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제주도가 아니라 회기동의 한 카페에서였다. 짱구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짱구는 프랑스어 교본을 조용조용 읊고 있었다. 취준도, 토익 공부도 안 하고, 프랑스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어를 왜 해?"

  내가 물었다.

  "유학을 갈지도."

  짱구가 답했다.

  "못 가면?"

  내가 물었다.

  "이민을 갈지도."

  짱구가 답했다.

  "안 가면?"

  내가 물었다.

  "재밌을지도."

  짱구가 답했다. 그리고 짱구는 얼마 뒤 카페가 떠나가라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짱구처럼 살 테다!"


  나는 다시 만난 짱구 선배에게 반하고 말았다.

  나는 짱구 앞으로 무용한 것을 잔뜩 갖다 바쳤다. 재미난 영화와 소설들, 놀이 기구와 솜사탕, 꽃다발, 달콤한 고백.

  짱구는 어느 날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얘, 넌 뭘 아는 아이구나."

  짱구는 말했다.



  나는 짱구가 좋다. 짱구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루에 열 번도 넘게 한다. 그런데 요즘 짱구가 슬프다. 세상은 짱구들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짱구는 나에게 물었다.

  "나 한심해?"

  짱구는 취준생이 되기 싫은 취준생이었다. 나는 짱구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짱구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짱구! 바다 보러 갈까?"

  짱구는 고개를 저었다.

  "나 너무 한심해."


  짱구는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한다. 그런데 취업 준비도 하라고 세상이 짱구를 부추긴다. 정말 그래야 해? 남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야?

  나는 '짱구 연금'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며 짱구를 꽉 껴안았다. 짱구들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바쁘고, 빠른 현대인들이 짱구들을 부러워할 수 있다.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짱구가 짱구처럼 살 수 있도록 세상은 딱 한 뼘만 느긋해져야 한다.


  "짱구야 나 봐봐 넌 얼마나 대단하냐면..."

  짱구는 내 말을 기다리며 눈물을 닦는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짱구는 말 없는 공백에 채워질 가능성 만큼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짱구랑 마라탕을 먹고 싶다. 왕가위 영화도 한 편 볼 거다. 그리고 오늘 마주한 아름다운 나무 모양에 대해 한참 떠들다 잠들 거다.


  짱구가 다시 프랑스어를 배웠으면 좋겠다. 짱구가 오래 곱씹고 뱉어낸 문장은 예민하고, 아름다운데 짱구가 다시 글도 썼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짱구들이 오늘도 짱구다웠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우주를 이루는 원소는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