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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May 25. 2022

마음을 받아주세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병상에 누워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을 지나치게 축하해 주는 거예요. 주인공은 졸업이 뭐 별거라고 이렇게나 축하를 해주나, 아버지가 참 무지하고 촌스럽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요.

나는 지금 나를 축하하는 거란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내가 죽고 없을 때 졸업하는 것보다 멀쩡할 때 졸업해주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기쁜 일인지 아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떠올려 봤어요. 어머니는 5만 원짜리 풍성한 꽃다발을 내 품에 안겨주고, 아버지는 캠코더로 나를 담고, 멀리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작 나를 축하하러 네 시간씩 고속버스를 타고 왔어요. 그럼 나는 낯간지럽다는 표정을 짓고, 축하를 한 아름 받아 집으로 돌아와요. 나는 아무것도 한 거 없이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왜 다들 이렇게나 호들갑일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식 때였나, 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내 졸업식에 오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요. 불편하게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과 영문을 모르겠는 채로 축하받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서운해 했는데 나는 바보같이 이제야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하네요.


사랑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축하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나누는 건 얼마나 큰 일인가요. 고르고 고른 마음을, 아주 특별한 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잖아요.

생애주기에 마땅히 받았던 축하란 비단 나를 향한 축하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건 그냥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하는 한나절 축제 같은 거죠. 색색의 마음들이 꽃잎처럼 흩날리고, 겉치레뿐이더라도 즐거운 말들이 오가는 그런 축제.

너를 축하해, 라는 말에 숨은 우리를 축하해, 라는 의미를 이제는 보게 돼요.


한번은 내 마음을 전달하고 이틀 내내 앓아누운 적이 있어요. 내 몸에서 커다란 공 하나가 쑥 빠져 나가 버린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어요. 마음은 그만큼 무겁고, 질량이 커다란 거예요.

직구로 들어오는 마음, 비켜난 마음, 흩어져 버린 마음, 아무튼 한번 나간 마음은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아요.

그걸 알기 때문인지 나는 남들의 마음을 제대로 받는 게 어려워요. 마음을 주고받는데, 나에게는 아직 더 많은 준비 운동이 필요해요.

얼마 전 소중한 친구로부터 생일 편지를 받았어요. 나는 그 손 편지를 뜯어보지 못하고 일주일 넘게 방치했어요.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을 보는 게 떨리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일주일동안 준비 운동을 한 거예요. 마음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을 고대하고, 고대하다 편지를 뜯었어요.


나는 그날 친구의 마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친구의 마음이란 이런 거였어요.

너의 생일을 축하해.

우리가 함께라서 감사해.

우리 내년에도 함께하자.


간만에 뛸 듯이 기쁜 하루였어요.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당신은 다른 이의 마음을 준비 운동 없이도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부럽습니다.

축제 같은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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