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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Aug 25. 2015

결혼하는 사람에게

서투른 시 읽기 #2 김남조 <약속>


약속 김남조


어수룩하고 때로는 밑져 손해만 보는 성 싶은 이대로

우리는 한 평생 바보처럼 살아버리고 말자.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철 따라 별들이 그 자리를 옮겨 앉아도

매양 우리는 한 자리에 살자.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불을 지피는

자리에 앉아 눈짓을 보내며 웃고 살자.


다른 사람의 행복 같은 것,

자존심 같은 것 

조금도 멍들이지 말고,

우리 둘이만 못난이처럼 살자.


일러스트_ 김나훔


친하게 지내는 소방서 반장님이 결혼을 하신다.

결혼식에 갈까 했지만 대전이라 선물로 시집만 드렸다.

시집 앞에 써드릴 시를 찾다가 김남조의 시, '약속'이 생각났다.


결혼이 아닌 결혼식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경향에 대한 담론을

문화인류학 전공 가족과 문화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주인공이 될 기회를 상실한 개인이 거의 유일하게 

특별해지는 순간이 결혼식이기 때문에 결혼식에 부여하는 의미가 커진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또, 그런 특별한 결혼식임에도 웨딩산업에 의해 몰개성 하게 

정해진 대로 진행되는 것 또한 경제적,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것.


담론을 분석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결혼식 그 자체보다는 결혼과 상대방에 대해 더 집중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결혼식이 특별하길 바라는 욕망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되니까.


미드 'Bigbang Theory' 
미드 'Bigbang Theory'
미드 'How I met your mother' 
미드 'How I met your mother'

미드 'How I met your mother'와 'BigBang Theory'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은 로맨틱하다.

결혼식 준비에 극성인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부담스럽게 전개되지만 곧 상관 없어진다.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이 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관객일 뿐이니까.

우아하고 완벽하게 보이는 결혼식보다는

두 사람이 두고 두고 이야기할만한 이야깃거리와 소박한 추억을 품은 결혼식이 로맨틱하다.


김남조의 시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자존심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어수룩하고 손해만 보는 바보'처럼, '못난이'처럼 산다고 해도

둘이서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할 거다.

보이는 건 그냥 재밌게 대처하면 되는 문제고,

둘이서 고마워하며 웃는 눈짓을 보내며 잘 살아가는 게 정말로 중요할 거다. 


둘만의 언어, 둘만의 '약속'을 가지게 되는 (결혼식을 넘어) 결혼이 되기를.

영드 'Sherlock'
영드 'Sherlock'
미드 'Modern Family'
미드 'Modern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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