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아닌 덕후가 되길 선택한 이유

이제는 돈이 따라오는 성덕이 되자

by 엄지언

육아 글만 쓴 지 5년째. 아이 낳고부터다. 5년간 매일 일기를 써서 육아 일기 약 2000여 편. 육아서 1000권 독파. 육아 칼럼과 연구 다수. 각종 sns로 육아서 콘텐츠 발행. 유튜브 영상 제작. 커뮤니티 운영. 이렇게 하면서 현재 아이 둘을 가정 보육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육아 '덕후'다.


내 전공과 무관한 아동학 수업을 학점은행제를 통해 몇 개 들어보았다. 참고로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육아 덕후인 나에게 아동학 수업은 어렵지 않았다. 복습하는 기분. 에세이는 한달음에 써졌다. 이렇게 계속 공부하고 학위를 따면 결국 내 길은 '전문가'가 되는 거겠지. 사실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현재 스코어는 전문가가 아니다. 가끔은 내가 전문가스러운 글을 올릴 자격이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 내 글이 맞는 경우가 많다. 가끔 어떤 연구들은 전문가도 나를 참고할지 모른다. 내가 2~3년 전 연구해서 올린 혁신적인 내용이 이제 육아서로 나오는 경우를 다수 보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좋은 글을 올려도 사람들은 나를 백 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전문가의 자료를 찾아 첨부한다. 외국의 최신 연구를 붙인다. 그럼 어 그럴 수도 있나? 하는 반응이다. 그런데 비슷한 것이 나중에 진짜 전문가의 검증된 자료로 나오면 다들 우르르 몰려간다. 나는 아 내가 이 이야기를 몇 년 전 했었는데...라고 이야기 꺼내본다. 거의 혼자만의 독백이다. 누가 나 좀 알아주길 바라면서.


내 글이 더 인정받으려면 전문가가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가끔, 능력은 있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전문가 과정을 밟지 않고 있다. 덕후의 라이프를 좀 더 누리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육아서를 쓰려고 했다. 원고를 쓰고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그런데 브런치 북을 만들면서 엄청난 고뇌에 빠졌다. 내가 쓰는 글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텐데. 어쩌면 평생의 영향일지 모르는데. 내가 그 책임을 질 자신이 있는가? 내가 하는 말들은 과연 다 맞는 이야긴가? 육아법은 수시로 바뀐다. 내가 옳다고 쓴 글이 몇 년 후 구닥다리가 되면 어쩌나? 원체 생각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나에게 육아서는 굉장히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내용을 담으려 노력했다. 철학과 고전 인문학을 연구했다. 또한 최대한 개인의 사례 감정에 호소하려 노력했다. 하나 쓰면서 느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전문가가 되어 육아서를 쓰면 얼마나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 하는가? 책을 쓰기엔 덕후로서의 내 위치가 편하고 좋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나는 배우는 게 너무 재밌다. 나는 완성의 욕구도 크지만, 배움의 열망 또한 크다. 전문가가 되면 내가 아는 것이 굳어진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사람들도 믿고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계속 배워 깨어있으려는 사람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싶다. 그런 내가 전문가가 되려면 할 일이 얼마나 많아질 것인가. 지금의 나는 배우는 데로 뱉으며, 또 이를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간다. 전문가가 아니니 책임은 적고 즐거움은 좀 더 높다. 배우는 것에 비중이 높은 지금의 단계가 나는 좋다.


또한 최 말단의 이유도 이야기해본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큰지도 모른다. 전문가가 되려면 돈이 든다. 학위를 얻으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육아가 중요하다. 경력단절 7년 차에 돈을 여기다 더 쏟아부을 수는 없다. 내가 전문가가 되려면, 이 덕후의 여정에서 생긴 돈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돈 버는 덕후가 되면? 과연 전문가가 되고 싶을지는 그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육아에 몰입하며 나는 많이 성장했다. 아이들도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아마 나에게서 영향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계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동안 돈에 관심이 전무했다. 너무 나를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려 한다. 상업출판, 유튜브, 돈 되는 글쓰기 등 많은 방법을 시도 중이다. 전문가가 아닌 위치에서 이것들이 가능할지는 해봐야 알겠다. 성덕의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전문가는 완성된 형태여야 한다. 하지만 덕후라면 흐르는 물 같다. 언제든지 배우고 또 수정해나갈 수 있다. 그런 고로 나는 오늘도 내가 덕후이기를 선택한다. 언젠가는 학위를 따고 전문가가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태를 즐기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음껏 몰입하고 배우고 즐길 이 시간. 이를 더 누릴 수 있게 돈아, 따라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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