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아닌 득 되는 사랑
많은 것을 준만큼 그걸 다루는 법을 알려주자
난초 아이는 부모와 강한 애착을 맺기 쉽다. 총애를 받을 수록 아이의 향기는 강해진다. 내가 많은 것을 준만큼 그걸 다루는 법을 알려주자. 아이가 나와 남에게 적절히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끈질기게 가르치는 것. 이것이 올바른 사랑일 것이다.
'애착' 모르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애착이 중요하단다. 어릴 때 애착이 평생을 좌우한다. 너무 중요하대서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애착. 나도 그 애착에 목맸다. 그리고 더욱 목맬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애착에 아쉬움이 있었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애착이 잘 다져지지 않아서인지, 가끔 세상 사는 게 너무 버거웠다. 자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정서적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어떤 때는 하늘을 날다가, 어떤 때는 땅으로 꺼졌다가. 마치 조울증 같았다. 내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을 다지는 것. 남들은 쉽게 되지만 나는 가지지 않았기에 엄청나게 노력해야 할 그것. 내 육아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첫째 낳았을 때 애착 육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나에게 중요한 만큼 더 배우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랑이 많이 필요한 아기였다. 난초인 나를 닮은 난초 아이였다. 잘하고 싶었다. 애착의 중심을 잡기 위해 반대쪽 이야기도 들어야겠다 생각 들었다. 서점에서 스캔하는데 마치 운명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책이 있었다. 미국 정신과 의사인 엘렌 위버 리비의 <페이버릿 차일드>. *이 이야기는 석돌 이후 아이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형제자매가 있을 경우 더욱 중요하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부모, 부모가 베푼 특권을 온전히 누린 아이. 그 아이가 다 자란 후 어른이 되었을 때, 행복하기보다 마음이 아픈 우리 시대 어른 이야기.
표지 문구만 읽어도 충격적이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책을 잡고 순식간에 읽었다. 읽고 보니 내 가족 구성원 중 일부 이런 케이스가 있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만 도덕이나 공감 능력에서 결여되어있는, 정확히 이 책이 말하는 총애의 부작용 사례. 너무 오랜 궁금증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권위 있는 부모가 아닌 '허용적'인 부모의 부작용이었다. 권위 있는 부모는 사랑만큼의 한계 설정을 한다. 하지만 허용적인 부모는 사랑'만' 준다. 형제 자매가 있을 경우 특정 아이에게만 몰아주기도 한다. 이런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겉으론 매우 매력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중심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 먼저 장점부터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총애를 받으면 높은 자존감, 자신감, 성취력 등으로 사회에서 승승장구한다.
-총애를 받는 아이는 자신의 힘과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도전을 헤쳐나갈 자신감을 키운다.
-총애를 받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렇게 총애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총애받는 아이는 도전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분투하며 성취도도 높다.
반면 특권 의식과 책임감 결여 같은 정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정치인 중 총애를 받은 인물이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페이버릿차일드 컴플렉스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클린턴의 백악관 스캔들이다. 미국 정치판에서 승승장구하던 젊은 정치인 클린턴. 그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천부적인 매력이 있었다. 손쉽게 터를 다져 빠른 속도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정치적 성과가 높고 지지율도 높았다. 하나 정상에서 또 다른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의 사생활은 책임감이 결여되어있었다. 각종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다. 뉘우치지 않고 거듭된 거짓말은 그를 더욱 추락시켰다.
-총애를 받는 아이 중에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총애를 받는 아이와 부모 간의 연대는 때로 아이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들은 때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랑을 주지 않아 생긴 부작용만큼, 아니면 오히려 그보다 더, 무책임한 사랑의 부작용이 크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하나 방법이 있다. 저자는 총애의 부작용을 중화시키고 장점을 부각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도덕심' 함양을 이야기한다. 도덕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총애를 받은 아이는 단점은 줄어들고 장점이 높은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가족 간 의사소통이 큰 역할을 한다. 균형이 깨졌을 때 바로잡을 제2의 인물이 필요하다. 아이가 둘 이상일 경우 더욱 중요하다. 돌아가며 골고루 아이들을 이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도덕심’이란 뭘까.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도덕심 : 도덕을 지키고 받드는 마음. 선악과 옳고 그름을 판별하여 선을 행하려는 마음.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법’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을 말한다. 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결과 중심적이다. 이와 달리 ‘도덕’은 옳은 것을 행하려는 내면의 동기이다. 법만 지키면 비도덕적이어도 법적으로 뭐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덕적인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을 따라간다. 도덕은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이지만 나와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렇담 더욱 사회적으로 느껴지는 ‘예의’와의 차이는 뭘까. 도덕과 예의는 또 다르다. 예의는 내면의 동기보다는 외부의 동기를 말한다.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관계의 도리이다.
먼저 법부터 시작해 도덕에 이르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예의를 지키는 것. 이것이 총애의 장점은 살리고 부작용을 막는다. 아이의 발달에 맞게 한계 설정을 한다면 이 부분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해석은 아이와 엄마에 따라 각자 다를 테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나의 경우는 단순 나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거기서 올바른 일을 행하도록, 그리고 예의를 고려하도록 한계 설정의 레벨을 조금씩 올려가고 있다. 물론 안정되기 전인 석돌 전엔 제대로 못했다.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게 조절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속도는 다 다를 수 있다. 최종 목적지를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또한 반응 육아가 허용 육아라는 이야기가 거론된 적 있다. 문제가 되는 케이스는 부모가 오로지 '아이에게만' 반응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생각한다. 아이에게 반응하지만,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사회의 요구’에도 반응한다면? 그리고 아이의 말과 행동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닌, 그 안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본다면? 그것이 진짜 옳은 반응이 아닐까. <논어>의 자장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자하가 말하였다.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융통성을 두어도 괜찮다."
내 아이를 키우며 한계(큰 덕)는 어디부터인지 허용(작은 덕)은 어디까지인지. 어떻게 하면 '독' 아닌 '득' 되는 사랑을 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총애를 받고 자랐다 해도 도덕적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긍정적인 자기 세계를 가지며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이를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가족 간에 솔직하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