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Apr 04. 2024

<더 커뮤니티>를 보며 드는 생각

사상은 공존하는 것

OTT서비스 웨이브에 핫한 예능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제목은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유튜브에 4화까지 무료공개 되어있) 더 커뮤니티는 다양한 이념을 가진 12명의 출연자가 한 장소에서 9박 10일 동안 함께 지내며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다. 극단적으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설정부터가 흥미로웠다.


 

'사상'이라는 것의 카테고리는 네 가지이다. 

정치(좌파 vs 우파), 젠더(페미니스트 vs 이퀄리스트), 계급(서민 vs 부유), 윤리규범의 개방성(개방적 vs 전통적). 지표의 정도에 따라 점수가 부여된다. 중도 성향일수록 점수가 낮고(최소 4점) 극단으로 갈수록 점수가 높아진다(최대 12점). 12명의 출연자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6인과 남성 6인이고, 대중에게 얼굴과 직업이 알려진 이들도 몇 있다(정치인, 작가, 유투버 등등). 그들의 사상코드는 수치상으로 4점부터 11점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것은 시청자들에게만 공개되고, 참가자들 자신의 사상코드를 철저히 겨야 하 설정이다.

나도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결과는 9점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되신다면 재미로 한번 해보시길.



https://the-community-survey.web.app/home



커뮤니티는 국가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다분히 그것을 의도한 연출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일원이고 그들은 투표로 리더를 선출한다. 리더는 공금 혹은 상등의 예산 집행 결정권을 갖고, 세금을 부과할 뿐만 아니라 식재료 입부터 탈락자 결정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권력을 가진다. 서바이벌 구도이다 보니 참가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액션을 취해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아 상금을 따기 위해서는 리더가 되거나 무리를 형성하여 내 편을 리더로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자연스럽게 세력이 형성된다.

간략한 룰은 이러하다. 반대세력에게 자신의 사상코드 발각된 참가자는 저격받을 수 있다. 상대가 저격에 성공하면(사상코드를 들키면) 탈락이. 따라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호감을 얻어야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포섭해야 한다. 공동체에 기여 해야 하고 서로를 감시해야 할 때도 있다. 국가라는 사회의 형성과 그 구성원의 역할을 연상하게 하는 이런 장치들이 끊임없이 마련되어 있다.

 

이를 테면 공동체는 수익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수익활동의 내용과 방식도 흥미롭다. 현실감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첫 번째 활동은 퀴즈 맞히기였는데 문제는 이런 식이다.


00은 2023년 4월 토요일 오후에 CGV 1관 A열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집에 오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봉투 10L 세 장을 구입했다. 00가 이날 쓴 돈은 얼마인가?


2023년에 입대한 병사가 만기제대할 때까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면 그 금액은 총얼마인가?


문제 자체도 고민거리이지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살아온 환경 같은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관전하는 것도 재밌다. '내가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은유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수익추구를 위해 공금을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모습도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벌어온 수익금을 배분하고 거기서 세율을 정하는 것 또한 논의 대상이다. 각자 의견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논쟁은 끊임이 없다. 어느 출연자가 말한 것처럼 국회의원들이 왜 그렇게들 싸우는지 알 것 같았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의사소통을 통해(때로는 다수결로) 결정해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동시에 호감도도 잃으면 안 되기에 적절한 사회적 가면도 장착해야 한다. 호감도를 얻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이 프로그램은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편한 마음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어떤 출연자들, 그러니까 나와 사상적으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불편했다.

자신의 이익만 관심 있는 모습, 가르치려는 , 자기중심적인 , 시혜적인 태도로 군림하려는 태도는 거슬렸다. 실제로 참가자들이 사전인터 때 했다는 발언들과 커뮤니티에서 밤에 벌어지는 익명 토론 주제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가 발전 과정에서 능한 독재자는 필요하다, 가난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와 같은 말들이 그랬다.



참가자들이 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장치적 허점을 공략하고 도모하는 모습에서는 어떤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다소 전체주의체제적인 흐름이 감지되었고 이것에 불편함을 표현한 사람이 불순분자로 의심받는 상황도 발생했다. (실제로 불순분자의 역할을 하는 참가자가 있긴 하다.) 참가자들끼리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물밑작업,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 누군가를 포섭하거나 몰아가기, 다수의 의견과 대치되는 의견을 낸 사람이 배척당하는 상황들을 보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건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내가 갖고 있는 가치의 지향점에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고, 내가 타인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극에 예민한 편이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음을 많이 다치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구와 있을 때 불편하고, 누구와 있을 때 전하다는 감각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고, 점차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다. 나그들에게 마음을 아주 많이 쓰며 헌신한다. 반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성향이 정반대인) 사람들과는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고 철저히 회피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비슷한 이유로 현실 정치에도 관심도가 낮은 편이다. 정치인들이 서로 험한 말로 인신공격을 하는 걸 보면 환멸이 느껴지고 심란해지는 까닭이다. <더 커뮤니티>를 보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꽤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런 사상을 갖게 되었으리라 추측되는 맥락도 읽혔고,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편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객관화가 되고 있다는 감각이 유익했다.



'마음의 평화'라는 나에게만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안전함만을 추구해 왔다는 걸 깨닫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배타적인 만남을 갖고 그 속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에만 관심 가졌었다는 것도 말이다.



때마침 선거철이다.

선거유세차량에서 떠드는 말들로 밖이 요란하다. 정치는 일종의 쇼라는 걸 알지만, 그 쇼의 기저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지키려는 욕망들이 다채롭게 공존한다. 사상은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황선우 작가의 말이 머릿속에 남는다. 정치는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휴직자에게 3월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