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Apr 11.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


이 책의 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를 직역했더라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쯤 되었을까. 확실히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직관적이긴 하다. 문장으로 제목을 요즘 스타일의 작명에다가 그마저도 어느 유튜브 썸네일에서 본 듯한 제목 같지만, 단언컨대 그 내용은 가볍지 않다. 장르로는 에세이가 될 텐데 그 안에서 작가는 여러 층위의 주제들을 자유롭게 다룬다.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 혹은 주변부에는 예술 작품이 있다. 그것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예술, 미술, 전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사랑할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에 직접 가 본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 각자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마흔 살쯤 인 듯.)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메트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온 300여만 점의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직원 수만 2천여 명에 이른다.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이곳을 방문했는데 하루 종일 관람하여도 구석구석 다 돌아보기 어려웠다. 그곳은 너무나 방대했고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뉴욕에 오래 머물 수 있다면 매일같이 메트를 방문하여 느긋하게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뉴욕에는 맨해튼에만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이 있어서 미술관 투어만으로도 몇 주가 걸릴 것 같긴 하다. 상상만으로도 행복...) 패트릭 브링리는 <뉴요커>에서 일하던 중 친 형의 죽음을 겪는다. 가족을 잃은 지독한 슬픔과 고통에 휘청거리던 그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라는 직업적 네임밸류를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는다.' 



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 일하며 특별한 경험을 한다. 고대 유물과 건축물들, 중세와 현대의 예술 작품에 둘러싸여 하루 8시간 동안 서서 작품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머리를 쥐어짜야 하거나, 마감에 쫓기거나,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일이 아닌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일. 아무것도 안 하지만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 그 단순한 일을 통해 작가는 깊은 고통과 슬픔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점차 내면의 상처를 회복해 나간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p.166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소진된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사람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충분히 채워졌을 때이다. 작년 말, 휴직을 앞두고 있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물었다. "휴직하면 뭐 할 거야? 계획 있어?" 나는 대답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그리고 두 달가량은 소위 말하는 생산적인 일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쉬었다. 하루 8시간 이상의 수면과 삼시 세끼의 식사만이 내가 꼭 지켜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저곳에 가보고 싶어. 저걸 배워보고 싶어. 이걸 해야겠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기 시작한 스스로를 보며 고갈된 자아가 채워진 걸 느낀다.



외국 출생인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경비팀은 인구학적으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축에서 각양각색이다. 미술관 경비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는 특별한 부류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수없이 많은 형태의 사람들이 이 직업을 택하며 각자 서로 다른 동력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 《뉴요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엘리트 사립학교 출신이었고 대부분이 출판계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었다. 메트의 경비팀에서는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사람, 택시를 몰던 사람,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한 사람, 목조 가옥을 짓던 사람, 농사를 짓던 사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 순찰을 돌던 경찰, 그런 경찰들의 활동을 신문에 보도하던 기자, 백화점 마네킹의 얼굴을 그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와 뉴욕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열의가 넘치는 사람도 있고 매사에 뾰로통한 사람도 있다. 경비 전문가들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P. 184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전시실에 서 계신 경비원분들을 본다. 지난 주말에도 아이들과 집 근처 시립미술관에 갔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거나 작품에 너무 가까이 가는 등 예측 불가의 행동을 할 수 있기에 나처럼 아이를 동반한 관람객은 경비원의 주요 주시 대상이 된다. 박수근, 장욱진, 나혜석의 작품 앞에 충분히 오래 서 있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아이들 손을 양쪽으로 잡고 조심스레 전시관을 걸어 다녔다. 제복을 입고 한 자리에 서서 우리를 감시하는 경비원들은 내가 폐 끼치지 말아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 책은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직업 세계를 들여다보는 통로이기도 하다. 뉴욕 맨해튼이라는 배경과 메트의 거대한 규모는 집단의 다양성을 더해준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가슴에 가냘프지만 확실한 떨림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 모네가 붓을 집어 드는 영감이 되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그림을 통해 모네가 느꼈을 전율이 내게 전해져 온다.

p.117



책을 읽으며 수많은 메트의 전시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이 몹시 설레고 반갑다. 작가가 책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의 이미지는 아래 사이트에서 거의 모두 볼 수 있다. 챕터별로 순서대로 작품 제목과 고해상도의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으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중간중간 멈춰가며 이미지 열람을 하시길 권한다. 메트에 직접 가지 못해도 분위기를 꽤 느낄 수 있다.



https://www.patrickbringley.com/art



우연히도 최근에 본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 속에서도 메트가 등장한다. 무려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이다(최근에 입덕했음). 티모시가 셀레나와 메트에 가서 작품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들이 보는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x> 같은 그림은 책에서도 자세히 언급된다. 또한 이 미술관 씬에서 두 사람의 동선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며 아주 잠깐 푸른 제복을 입은 메트의 경비원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읽고 있던 책과 보던 영화가 겹쳐지는 재밌는 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SN6R5_Bk8&t=11s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저자 패트릭의 삶과 그의 내면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더 이상 미술관 경비원이 자신의 삶에 완벽한 직업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그는 사직서를 낸다. 가족을 잃고 상실의 슬픔으로 고통받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 삶. 그 과정에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후의 여정은 물론 누구도 알지 못한다. 좋은 책과 영화 같은 콘텐츠를 보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에 살며시 발을 담가본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살아온 날들을 통해 내 앞에 주어진 날을 다르게 본다. 무수한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예술 작품을 보듯이. 그 기쁨과 고통 속에서 변화무쌍함과 예측불가함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일테다. 사는 일에 능숙해지기란 어려울 것 같다.



확실한 건,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메트라는 것이다. 뉴욕에 다시 갈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음... 오 년 후..? 십 년 후?

매거진의 이전글 <설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