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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30. 2024

투명한 마음

방과 후에 곧장 태권도장갔다 가하는 담이를 마중 나갔다. 도복지를 입은 귀염둥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담이는 누구보다 잘 웃는 아이다.

! 아이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는 주섬주섬 뭔가를 찾는다. 나에게 내민 건 알록달록 색칠한 약봉지였다.


-엄마 나 오늘 약 만들었어.

-약?

-어, 보여줄게. 엄마 것도 있어.


약 모양이 그려진 종이에 '엄마가 아빠한테 화 안네는 약'라고 쓰여있다. 아, 웃기고도 민망했다. 아침에 나는 남편과 언쟁을 했었다. 남편은 시종일관 차분히 말했고 내 언성 차츰 높아졌었다. 뭐에 꽂혔는지 애들이 듣고 있는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보리와 담이가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하는 걸 듣고 그만뒀었다. 


-그래 엄마 이거 먹어야겠다. 마워, 이 효과가 있으면 좋겠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담이가 건넨 마이쮸를 입에 넣었다. 아이가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아침저녁으로 뽀뽀를 퍼붓는 아빠에게는 '조금만 뽀뽀하는 약'을 처방했다. 아빠의 애정폭격에 꺅꺅거리는 자매가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근한 환자분은 그 약을 극구 거부했지만 담이가 꼭 먹어야한다고 으름장을 놔서 억지로 먹었다. 그리고나서 마구 뽀뽀를 했다. 담이는 혼잣말로 말했다. "이상하네.. 아빠한테는 안통하네."



언니에게는 달리기 천천히 하는 약을 . 한 살 언니인 보리한테 달리기를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은  짠하다. 석하게도 자매는 타고난 신체조건이 다르다. 보리는 운동신경 좋아서 늘 달리기 1등인데, 담이는 전혀 그쪽이 아다. 대신 너는 치명적인 귀염둥이라고! 나는 속으로 말해보았다.



본인 약독특하다. '고양이 안 무서워하는 약'?


-음, 나 크리스마스 될 때까지 고양이 안 무서워해야 해.
산타할아버지한테 고양이 선물 달라고 할 거거든.

-아.. 고양이를?

-응 나는 고양이가 조금 무서운데 그런데 고양이가 좋아.

-무서운데 좋구나.

-응 산타할아버지가 줄지 안 줄지 몰라도 일단 소원 빌 거야.



그러고 보면 담이는 동물을 약간 무서워한다. 이모집에 있는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다가가지 못했. 엘리베이터 이웃과 강아지가 같이 탈 때면 내쪽으로 슬금슬금 숨는다. 나는 담이가 동물을 싫어한다고 생각. 뭔가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는 마음은 투명해서 사랑스럽다.


담이가 조제한 약




보리와 함께 학교에서 받아 온 글쓰기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 1번. 나는 결혼을 했습니다. 나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 것 같나요?


나라면 꽤 고민했을 질문인데, 보리는 술술 말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다정한 사람, 상냥한 사람요!

-우와, 좋네. 그 사람은 뭘 좋아할 것 같아?

-나처럼 계란국을 좋아하겠지? 운동도 좋아할 거야 아빠처럼.

-2번. 나는 결혼에서 아이도 낳았어요. 아이가 벌써 9살, 2학년이 되었어요. 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역시나 일초만에 대답하는 보리다.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해줄 거야.


아이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찌르르했다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그건 매일 아침에 보리가 듣는 말이.  아이들이 집을 나설 때 꼭 안아주면서 나는 말한다. 사랑해,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간혹 아침에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이 말은 빼먹지 않았다. 자기가 들은 말을 자기 자식에게 해주겠다는 보리가 몹시 애틋해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지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거대한 우주이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께 보낸 사람을 그대로 모델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분위기를 잘 감지하고, 들은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온몸으로 세상을 흡수하고 닷없이 총명한 말을 해대는 아이들을 보며 좋으면서도 무섭다. 동시에 어떤 책임을 느낀다. 딸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더 너그러워지고 싶고 더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고 싶다. 아이들이 볼 때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어른 말고 옆에 누가 있든 없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지 않아 이들은 이런 나의 마음까지 읽어낼 테다.


 정말 솔직한 나의  아이들처럼 투명해지고 싶다는 이다. 하지만 내가 나의 어두운 면까지 다 내보이며 투명해져도 될까. 나는 고민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나의 역할에 관해서. 지속가능한 좋은 부모의 상像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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